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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Oct 27. 2019

하기 싫은 것

심리검사에 대한 상담을 계속해서 받으며

상담사 선생님께 반복적으로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해야 하는 줄 알죠?"

"네."

"그걸 하고 있나요?"

"...아뇨."

"그럼 그건 하기 싫은 거예요."




오늘 목사님께서 사도신경의 두 번째 고백,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외아들)', 즉,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 주', 즉, 우리의 주인이십니다."라고 선포하시며 이런 도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주님 앞에 나아가는 그 간절함, 그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그 최소한의 기대를 가집시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거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모든 것을 거는 고백입니다."


엄청난 충격은 그 말씀이 제게로 날아와 꽂힐 때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주인이라고 고백은 하는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는 아는데!

그런데 나는 그걸 왜 못하고 있을까?

왜 바쁜 일을 핑계로 거룩한 습관을 그만두고,

왜 어려움에서 도망가려고 스마트폰을 묵상할까.

 

아아,

내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주로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구나.

내가 주인으로 살고, 내가 구원자로 살기 원해서구나.



머리에서 가슴 사이의 거리가 가장 멀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당위성이나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머리는 하나님을 찾으나 가슴은 내 욕심을 따르는 상황에 제가 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긍휼만 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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