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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Jan 26. 2020

섭리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이해

1. 간주관성과 객관성


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사람의 주관이 집단으로 모여 형성하는 '간주관성'만 존재한다 생각합니다.

이런 간주관성은 인간 의식과 판단 근거의 저변에 존재하는 이기주의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여기서 '이기주의'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넘어,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실존하는 '나'를 중심으로 객관은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인 판단만 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은 '남처럼 생각해라'가 아니라, '내 몸처럼 생각하라'라고 하셨겠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은 완전하게 선이시며, 완전하게 객관적이기도 하시고, 또 완전하게 주관적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인간 구원의 계획을 그분의 뜻대로 완전히 구상하셨고, 그 계획은 하나님의 완전한 주관적으로 시작(혹은 완전한 주권)되었지만 모든 인간의 구원이 완전한 객관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바로 그 표현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간주관성을 의심하고 우주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객관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2. 비틀린 세상과 인과응보


세상은 아담의 타락 이후부터 비틀렸습니다. 하나님이 임명한 세상의 대리 지배자에 있었던 사람이 타락 즉시 세상의 피지배자가 된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선을 완전히 잃은 인간은 죄(혹은 악)라 불리는 원인의 씨앗을 역사에 꾸준히 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입니다. 선사부터 심긴 죄의 몇몇 개가 발아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죄의 씨앗을 심는 지금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공중의 권세'라 표현합니다.

이 비틀린 세상을 바로잡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간단한 방법을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힘들고 어려우며 심지어 자신마저 죽이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비틀고 죄를 심었듯,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하여금 비틀린 세상을 바로잡고 사랑을 심었습니다.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지 않습니까, 모두가 알듯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기원으로부터 끊어지지 않는 죄를 인식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 죄 안에 있는 인간을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안에는 해결되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부자와 빈자가 있게 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장애를 허락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불운한 죽음을 허락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선한 자에게 물질의 복을 매번 허락하지 않으실까. 왜 하나님은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하셨을까...


작은 머리로 단편적인 이해가 아니라,

삶 전체로 하나님과 걸어가며 이해하고 싶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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