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신자 Jul 19. 2020

공예배에 대한 생각

교회 정규 예배 외 소모임, 단체 식사 금지

예배는 하나님과 각 사람 간의 친밀한 관계를 쌓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졌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또한 삶에서 은밀한 골방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하나님이 없으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교제가 예배라면, 굳이 공예배를 드리지 않더라도 골방 예배면 그리스도인에게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 의문은 장소적 의미의 교회에 대한 근간을 묻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고민에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십자가 모형이 보여주는 예배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세로축은 하나님과 각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화목의 명확한 증거가 바로 예배입니다.

이 세로축이 굳건하게 서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의 가로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과 나는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이런 교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으로 바뀌고, 이것은 이웃과 세상에게 나아갑니다. 원수에게까지 나아갑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삶의 예배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도 사람이고, 세상을 살아가기에 계속된 일상의 예배, 일상의 경주가 너무 힘듭니다. 때로는 낙망하고, 스스로에게 절망하고, 사랑을 주는 것이 너무 힘들고, 보답받지 못하는 감정의 상처가 계속 우리의 영혼을 할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이를 아시고, 그분 스스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창조사역 이후의 안식하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이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일을 그치고 세상을 방기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이 있습니다. 안식을 하실 때, 이 세 위격이 서로에 대해 오롯이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완전하고 완벽하며 충만한 사랑을 풍성하게 누렸던 것입니다.


세상과 이웃에게 상처를 받고 지친 몸으로 공예배에 함께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으며 불완전하게나마 오롯한 사랑의 교환, 그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치유되고, 고통과 증오와 죄로부터 자유하고, 결과적으로 다음 주간의 삶의 예배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예배는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예배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한 주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고, 때론 위로하고, 때론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그 모든 것이 예배입니다.


지난 7월 10일부터 코로나로 인한 정규 예배 외 소모임, 단체 식사를 금지하였습니다. 이는 세상이 교회와 예배를 어떻게 보는지 그 관점을 여실히 반영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모여서 정규 예배만 끝나면 끝이다.' '교회가 제공하는 식사는 구제와 복지 차원의 일이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은연중에 이런 관점을 드러냅니다. 가나안 성도와 교회에 상처 받는 분들이 바로 이런 관점의 교인 때문에 교회를 떠나간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고 받는 게 아니라, 예배와 단절된 자기중심적인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바탕이 공예배의 오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공예배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건물 안에서 모이는가? 왜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리는가?

그리스도인 각자는 이런 질문에 고민하고, 고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답을 찾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섭리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이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