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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Oct 27. 2023

겸손과 온유와 용납

에베소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에베소서 4장 1~2절》


자신을 드러내야 생존하는 세상에서 겸손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기형적인 방법이 등장합니다. '비틱'이라는 방법입니다.

비틱은 그렇지 않은 척하며 은근히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을 지칭하는 은어입니다. 순진한 척, 모르는 척, 아주 좋은 자신의 소유물을 SNS에 드러낼 때 상대방은 그 모습을 보며 '비틱질한다'라고 합니다.

 

또한 세상은 또한 과도한 겸손을 요구합니다. 사람을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부품처럼 부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아주 심하게 폄훼합니다. 자살과 우울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3개의 단어를 통해 이런 세상 속에서도 합당함을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겸손과 온유와 용납입니다.


겸손은 무작정 자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 2장 3절》

주의할 점은, 남을 낫게 여기기 위해 자신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 어렵다면 스스로가 생각하는 기준과 소유물을 비워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온유는 이런 겸손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필요합니다.

온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따뜻함을 발하는 중심,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중심에는 아주 강력한 뜨거움과 부러지지 않는 굳건한 심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온유와 겸손의 중심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용납은 온유와 겸손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오죽 어려우면 말씀에서 두 가지로 방법을 제시하겠습니까.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상대를 용납할 수 있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도, 부모님과 동생을 사랑하나 용납하기란 참 어려워서 결국에는 화를 내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때 저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오래 참음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작정 참기만 한다고 용납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이는 오래 참을 수 없을뿐더러, 상대방도 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불편하게 됩니다.


겸손, 온유, 용납. 말씀을 묵상하고 생활하면서도 풀어내기가 참 어려운 단어들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말씀이 도전하기에 이 단어들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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