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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Feb 05. 2024

시편의 심판

C.S 루이스 <시편 사색>

시편 묵상을 나누면서 참고할 만한 글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들렀습니다.

그렇게 C.S 루이스의 <시편 사색>과 만났습니다.


이번 글은 <시편 사색>의 첫 번째 소제목인 '시편이 말하는 심판'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마지막 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하나님이 심판관으로 서 있는 엄숙한 법정을 그려볼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의 심판은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시편의 법정은 심판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자신에게 악을 행한 상대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법정을 자신이 피고석에 앉아 있는 형사재판으로 그리는 반면, 유대인들은(시편의 기자들은) 자신이 원고로 앉아 있는 민사재판으로 그린다는 점입니다.

(형사재판은 피고의 죄를 판별하는 재판이고, 민사재판은 서로의 잘잘못대한 결론을 판단하는 재판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의 재판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는 당대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약에서의 불의한 재판관은 정의롭지 않은 판결을 내리는 것보다 더한 자입니다. 그들은 억울한 일에 대한 심판을 원하는 자들을 무시하며 법정에 출입하는 것조차 막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억울한 일이 받아들여져 재판이 열리는 것이 유대인들의 소망이었습니다. 심판과 법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들의 기쁨이고 소망이 성취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는 지금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이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민사재판으로 묘사하는 유대적 그림이 극명하게 일깨워 주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단순히 하나님의 (완전 무결한) 기준에 미달될 뿐 아니라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서로 지켜야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기준에도 미달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서로 지켜야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기준'에 부합하였는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내 이웃을 공의가 아닌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업무나 지시를 핑계로 착취나 압제를 하지 않았는지 살피고 반성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심판에 대한 인식은 또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이런 경고를 줍니다.

'내가 옳다'라는 확신과 '나는 의로운 사람(선한 사람)이다'라는 확신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은 특정 상황과 특정 문제에 대해 옳았던 적이 있는 것이고, '나는 의로운 사람이다'는 자신의 인격이 항상 의롭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쉽게 내가 옳다는 생각이 나는 의롭다는 생각으로 발전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변론도 하지 못하는 죄인인데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시편의 심판은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주체하는 민사재판의 결과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억울함과 분노가 심판으로 인해 해결되는 경험을 합니다.

다만, 우리는 심판에서 스스로가 피고가 되지 않도록 지극히 인간적인 기준에 부합되도록 행동해야 하며,

우리의 행동이 옳은 행동이 될 수 있을지언정 우리 자체가 의롭게 되리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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