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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자 Feb 26. 2024

연역적 성경 읽기와 귀납적 성경 읽기

성경을 읽는 두 가지 큰 틀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보통 특정한 시각을 통해 성경을 읽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신학적인 큰 틀(대전제)을 가지고 말씀을 읽습니다.

이런 방식을 연역적 성경 읽기라 합니다.

연역적인 방식의 흐름은 삼단논법이 대표적입니다. '사람은 죽는다. 한신자는 사람이다. 한신자는 죽는다.' 이를 성경 읽기에 적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대속죄일날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속죄물의 피가 지성소 안에 뿌려져야 했다. 이 속죄물의 피는 예수님의 피로, 구약시대 사람들 또한 (비록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이런 연역적 성경 읽기의 유익은 잘못된 해석이나 이단적 사상을 방지할 수 있고 어려운 성경 읽기가 쉬워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귀납적 성경 읽기는 개별적인 사건을 통해 대전제까지 향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영화를 보거나 글을 읽을 때 일어나는 작용으로, 개별적인 스토리로부터 주제를 도출해 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현대의 책처럼 그냥 읽기에는 쓰인 시기와 우리 사이에 엄청난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표현과 문화의 차이가 그만큼 상이합니다. 여기에 더해 번역에 대한 차이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확한 성경 읽기를 하기 위해서 성경연구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큐티나 귀납적 성경연구(PBS, 개인 성경 연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구절은 제가 연역적 성경 읽기만을 할 때 항상 걸리던 말씀이었습니다. 천국은 침략을 당하며, 침략하는 자의 것이라니. 마치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침노하다'를 '정말 열광적으로 믿다, 소망하다' 또는 '전심으로 회개하다'라는 단어로 어렴풋이 바꿔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귀납적 성경 읽기를 하자 이 구절이 확실하게 이해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에 대한 이해, 쓰인 문체, 문맥상의 위치와 의미 분석, 본문구조 분석 등은 생략하겠습니다)

'침노하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수동태와 중간태(수동과 능동의 의미 모두 포함)가 가능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중간태로 해석한다면 이런 의미가 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나니 침노당하는 자는 (천국에게) 빼앗느니라'

저는 위의 해석을 통해 이 구절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과 구원받은 자의 신분변화를 나타내는 말씀으로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역적 성경 읽기와 귀납적 성경 읽기는 함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귀납적 성경 읽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미세한 것에 집중하다 보니 방향을 잃고 어긋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역적 성경 읽기는 집중하는 주제 이외의 것들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으며, 말씀의 직접적인 감동과 깊이 있는 성찰을 막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읽기의 방식 다 각각의 단점이 있으나, 둘 다 함께 사용한다면 각각의 장점으로 충분이 상쇄하고 더 나아가 깊이 있고 진리에 가까운 이해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성경을 펴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니 매일 성경 한 구절이라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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