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시편

by 한신자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지켜 주십시오. 주님, 나는 주님만 기다립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을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주십시오.
《시편 25편 21~22절》


요 며칠 비염과 몸살로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약국에서 구매한 비염 약과 타이레놀로 어찌어찌 버텨보려 했으나, 두 약을 동시에 먹자마자 속이 뒤집어지고 고열과 두통에 시달려 결국 출근도 못하고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시간은 병원에 문이 열리기 전까지 집에서 버텨야 하는 8~9시간 정도였습니다. 고열과 두통, 오한과 배앓이로 잠에 들지 못하고, 침대에 누었다 일어났다 하며 멈춰 선 것만 같은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이런 끔찍한 시간 속에서 어떤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옅은 잠에서 꾸게 된 꿈인지, 고열로 인한 환각인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내용만은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구약의 여러 이야기들이 영화처럼 쭉 지나가며 그 끝에는 이스라엘의 성전이 보입니다. 이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인지, 스룹바벨이나 헤롯의 성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구약의 모든 이야기가 성전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신기루처럼 흐릿합니다. 마치 자욱한 안개가 성전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다가갈수록 흐릿한 성전의 웅장한 형체는 더더욱 흐려집니다. 그러나 안갯속에 숨겨져 있던 사람의 형상은 점점 뚜렷해집니다. 그 형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완전하고 올바른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치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이 결코 이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맙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완전하고 올바른 삶이 존재할 수 없다는 부정이 그 하나이며, 나머지 하나는 완전하고 올바른 삶의 기준을 나 자신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후자의 반응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끌어내려 현실에서 지키기가 가능한 규정으로 바꿔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은 완전히 등을 돌린 채로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대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보다 위대한 왕이었음에도,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부족함을 인정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가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계명을 왜 우리에게 주셨을까 정말로 치열하게 고민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불합리한 분이 아니시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넘치는 분인데 왜 이런 기준을 주셨을까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과 간구에서 그는 결국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죄와 사망의 구원자, 자신은 비길 수 없는 장차 오실 왕 중의 왕이라는 존재에 도달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의 말씀처럼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허다한 죄악들로부터 벗어나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 주십시오! 주님! 저는 장차 우리에게 직접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 마음의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하실 수 있습니다!"


시편의 고백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의 소망은 실제적인 복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을 신뢰하는 모든 이들은 완전하고 올바른 삶이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믿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아무리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분 안에서 완전한 뜻을 이루어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고백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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