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재난의 날이 오면, 주님의 초막 속에 나를 숨겨 주시고, 주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감추시며, 반석 위에 나를 올려서 높여 주실 것이니,
그 때에 나는 나를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높이 치켜들겠다. 주님의 장막에서 환성을 올리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
《시편 27편 5~6절》
나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이 당면해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재난이라 부릅니다.
재난은 우리에게 갑자기 들이닥쳐 일상적인 삶을 파괴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생각해 왔던 것들을 삼키고, 우리의 마음을 찢기며, 우리의 생각을 앗아갑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난이 끔찍한 이유는,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세상에서 내게 찾아온 재난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은 재난 뒤에 또 다른 재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네 죄 때문이야.'라는 비난의 말로 말입니다.
그래서 재난의 날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을 견뎌낼 피난처이고, 재난을 이겨낼 힘입니다.
재난 앞에서 시편 기자의 고백, 그리고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고백은 명료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고,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과 목적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재난으로부터 반드시 지키시리라 신뢰합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우셔서, 내 마음을 때리는 재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혼내시고, 단련하셔서 내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재난의 말들 속에서 우리를 굳건히 일으키십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고백을 향해 이렇게 반문합니다.
'너희의 믿음은 항거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의 정신적인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구원받지 못했다. 너희는 여전히 패배에 남겨져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께서의 부활로 자칫 정신 승리에 불과할 뻔했던 우리의 고백을 충분히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당면한 재난을 피할 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재난을 딛고 이길 힘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설사 우리가 재난 가운데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재난의 말 때문에 사망의 경험을 할지라도 우리의 고백은 변함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날 죽여도 내가 부활한다면 재난은 재난이 아닙니다. 재난의 마음이 날 짓밟아도 내가 부활한다면 나는 평화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활로 우리를 초대하셔서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숨기시고, 사망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도록 우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부활절로 향하는 고난의 주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재난에 직면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붙들고, 신뢰하고, 소망하며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