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그 때에 도성 수산에는 모르드개라고 하는 유다 남자가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야일이고, 할아버지는 시므이이고, 증조부는 기스이다.
그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왔을 때에, 함께 잡혀 온 사람이다.
《에스더 2장 5-6절》
에스더서는 여러 논란이 있는 책입니다. 히브리 성경의 기준으로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아 '이것을 과연 구약 정경으로 봐야 할까'같은 논란부터, 역사 사료에는 크세르크세스의 왕비가 아메스트리스로 기록되어 있고 폐위된 와스디 왕후나 에스더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그래서 비평학적 학자들이나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에스더서를 종교적 우화나 부림절과 관련된 전설로 이해해야 하지 않나 주장하기도 합니다. 마치 욥기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앙을 배경으로 둔 저로서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스더서의 일부 내용이 (신앙적 유익을 위해)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역사적 사료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지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일로 믿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눈으로 에스더 2장을 묵상할 때에 한 가지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5-6절이 바로 그 지점인데, 이 부분과 관련하여 개역개정은 6절의 주어를 모르드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에2: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느부갓네살왕의 죽음(기원전 562년)과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기원전 486년) 사이의 기간은 약 76년이고, 유다 왕이 포로로 잡혀가는 시기와 에스더 본문이 설명하는 시기까지 고려한다면 약 100년 정도까지 늘어납니다. 개역개정의 번역대로 이해하자면 모르드개는 100살이 넘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르드개가 왕궁의 문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에2:19, 새번역] 처녀들이 두 번째로 소집된 일이 있는데, 그 때에, 모르드개는 대궐에서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또한 사촌지간인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나이가 얼마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데, 노년의 나이에 어떻게 후궁으로 발탁될 수 있었겠습니까.
[에2:8, 새번역] 왕이 내린 명령과 조서가 공포되니, 관리들은 처녀를 많이 뽑아서 도성 수산으로 보내고, 헤개가 그들을 맡아 돌보았다. 에스더도 뽑혀서, 왕궁으로 들어가 궁녀를 맡아 보는 헤개에게로 갔다.
그래서 개역개정의 이 번역은 문맥상 오해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새번역에서 '그'로 번역된 단어를 개역개정은 '모르드개'로 해석했지만, 그 앞에 절의 증조부 '기스'를 받는 단어로 해석하는 것이 실제 연도 면에서 타당합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의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라는 것을 강하게 확신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기록한 사람, 편집한 사람, 번역한 사람은 무오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들은 각기 자신의 한계를 지니고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저나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만약 이들이 무오하다 주장한다면, 저는 가톨릭의 교황 무오설과 동일한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들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광신의 늪에 빠져 썩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씀 한절 한절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은 어떤 이단적이고도 불신앙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풍부함과 풍성함을 근원에 두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날마다 새롭게 경함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애3:22-23, 새번역]
22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23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향한 여러 분석과 이론을 머리 아파하지 마시고, 그것들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하나님을 경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