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금 신상은 바벨론의 최고신인 마르두크 신상이라기보다는 느부갓네살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3장의 신상이 2장 신상의 금 머리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인간 창조 기사를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임을 나타내는 것처럼, 금신상은 왕의 통치 지역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신격화된 왕에 대한) 우상숭배와 더불어 왕의 통치를 수용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세 친구가 절하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 거부,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충돌하는) 제국의 질서 거부입니다. 당연히 왕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반역도당을 반드시 처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3:17-18, 새번역]
17 불 속에 던져져도, 임금님,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18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신앙적으로 큰 울림울 주는 고백이 이런 맥락 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죽음 앞에서의 담대한 거부와 저항은 지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왕에게는 별로 감동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더욱더 화가 난 왕은 이들을 풀무불에 던지라 명령합니다.
[단3:24-25, 새번역]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모사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화덕 불 속에 던진 사람은, 셋이 아니더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임금님."
25 왕이 말을 이었다. "보아라,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다.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화덕 안에서 걷고 있고,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다! 더욱이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다!"
풀무불 속에 세 친구와 함께한 신의 아들(신들의 아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라는 설과, 두 번째는 (신약적 관점으로) 구원하기 위해 선재적으로 임재하신 예수님이라는 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교부들의 전통적 관점인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하여 본문에 접근하겠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금신상은 위대한 제국의 질서, 왕의 강력한 통치를 상징하는 기물입니다. 그러나 세 친구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바벨론 제국 안에서, 바벨론 왕의 통치를 거부한다면, 이들은 어디에 속해 있는 것입니까?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속국으로 전락한 유다? 한참 전에 갈라진 다윗의 통일 왕국?
실패한 하나님의 신상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자손들 앞에 또 하나의 '하나님의 형상'이 등장합니다. 그는 죽은 것들과 다르게 살아있습니다. 그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그는 압제가 아닌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셨고, 제국의 질서를 거부한 이들에게 부활의 질서가 되어주십니다.
이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다시 시작되었고, 이 나라에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세상의 질서와 죄악의 통치를 거부해야 합니다.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문 밖을 나선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세상 속에서도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세상의 통치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그것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