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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걍 Jul 08. 2020

주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주 먼 옛날, 우리가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살결에 몸을 부볐을 때,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항상 비워둔 한 켠이었지. 그리로 늘어뜨린 줄을 당기면, 가장 먼 곳에서 먼 곳으로 전화를 걸 때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나보다도 먼저 태어난 생각. 이제는 받는 사람 없는 부재중 전화. 그래도 빛 아래에 네가 있으면, 나는 나의 미소를 만지게 되고, 종교는 아니었지만 기댈 수 있는 곳을 믿음으로 삼았으니까. 나의 아름다움보다 먼저 아름다웠던 기억. 우리는 서로에게 등져도 따뜻한 그림자야. 다르게 걷고 있는 우리 사이에 맹목이 지저귀고, 그러니 네가 행복하길 바랐어. 우리는 다르게 태어나서 같은 무덤에 묻힐 테니까. 묻기도 전에 먼저 둥지를 튼 대답. 그래도 너를 사랑할 수 있어. 나의 불안은 너의 불행에만 반응하는 파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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