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은 꼭 닫혀 있습니다.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세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도깨비가 살 것 같습니다. 사람의 눈이 없는 곳에서 장난감들이 두 발로 걷고 뛰고 이야기하는 어느 영화처럼 서랍 속에서는 온갖 잡동서니가 뛰어 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소인국들의 나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서랍인데도 앞으로도 나는 영영 그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랍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서랍에 들어간다는 건 넣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젠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밖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서랍은 과거입니다. 잠시 기억하길 멈추는 겁니다. 잠시 시간을 멈추었다가, 꺼내었다가, 다시 멈추기를 반복하는 겁니다. 그러면 서랍 속의 이야기는 늙지 않는 것일까요. 물건 대신 서랍이 낡아갑니다.
멈추어 있는 동안 서랍 속의 것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것들은 살아 있는 것일까요? 기억에서 잊혀진 동안에도 그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죽었기도 살았기도 한 상자 안의 고양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전히 서랍 속의 세계는 물건이라기보다 상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랍은 우리가 유일하게 벌일 수 있는 마법입니다. 판단을 보류하고 잠시 멈춰둘 수 있게 하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금기는 깨어지라고 있는 법이니까 봉인은 언제고 풀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법이 풀린 물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랍 속에 넣었던 물건이 더 이상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면, 그래서 그것이 다시 시간 속으로 들어와 판단에 처해진다면 그것은 분명 서랍의 마법이 풀린 탓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