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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걍 Jul 03. 2020

숨결

180629, London, UK.


 ‘언니가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원래는 다른 걸 선물해 주려다가요…….’


 생일 선물을 건네며 종알거리는 말 속에서 그 말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타인이 나의 사소함을 기억해주는 건 언제나 놀라움을 선사해주니까. 맞아. 나는 잠에 잘 못 들었었지. 그때는 고마움에 호응하듯 덧붙인 말이었지만 그건 늘 사실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잠에 빨리 들지 못한다. 갈수록 내 뇌가 잠드는 법을 까먹고 있는 것만 같다.


 어두운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건 고역이다. 시간은 다른 어떤 일을 하면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데, 가만히 시간의 앞에 서 있기만 하면 그건 온 몸으로 제 존재를 부딪혀 온다. 무료함은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저주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저주에 시달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나는 조금 편안해진다. 이미 잠든 누군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나도 그 숨을 따라 잠들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기 힘들 때면 나는 곁에 누운 이의 숨소리를 따라하곤 했다. 어두운 밤 눈을 감고 잠든 이의 숨에 집중하다 보면 숨에도 결이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마치 지문처럼, 숨에도 결이 있었다. 숨결은 사람마다 다른 속도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내가 듣는 숨결이 이 사람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걸 느낄 때면 따듯한 위안이 되었다. 손을 잡지 않아도 숨소리를 통해 은근한 무엇이 그 사람의 온도를 나에게 전하는 듯했다.


 숨결은 흘러나가는 것. 숨겨도 흘리게 되는 것.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이 몸을 들어왔다 나가는 것. 마치 혈액처럼 이 몸을 돌고 도는 것. 가끔은 그것이 찬연하게 상상될 때가 있었다. 고흐가 그린 별밤의 흐름처럼, 파스텔톤의 찬란한 숨결이 우리의 몸을 오고가는 걸 상상하다 보면 그래도 인간이 조금은 아름다운 존재 같아지고 그러면 조금은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나는 은은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며 겨우 잠에 들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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