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회사 내부에서 마케팅 대행 실무를 담당했다. 우연한 기회로 중학교 한 학급을 대상으로 마케팅 직무교육을 펼치게 되었다. 한 달 반이나 전에 나왔던 이야기가 어느새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커리큘럼도 더 자세히 구성해야 했고, 발표할 PPT도 준비해야 했고, 시뮬레이션 연습도 필요했다.
마케터가 뭔지 '호기심'이라도 들게 하자
성인교육은 보통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실전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과연, 14살의 아이들이 단 3시간 만에 마케팅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도 퍼포먼스 마케터를! 사실 첫 청소년 교육이기도 했고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런데 점심 메뉴 외에는 관심 없던 15살의 내가 떠올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케팅이라는 포괄적인 개념보다 우리 주변의 '광고'를 찾아보고 직접 'SNS 매체'를 실습해 흥미를 유발하는 게 맞았다.네이버 웹툰만 하더라도 우리는 단순히 웹툰을 즐긴다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광고 구간이 숨어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삶을 감싸고 있는 광고들을 함께 찾아보고, 더 나아가 남녀노소 하루에 한 번 들락날락 거리는 매체 유튜브 광고를 실습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 컴퓨터실을 못 쓴다네요, 방법이 없을까요?
이럴 수가. 디지털 마케팅 실습인데 컴퓨터 없이 진행하라뇨. 모바일로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교육을 너무나도 진행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수가 떠오르지 않아 진행을 못할 것 같다고 교육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갱작가 - "정말 죄송하지만, 컴퓨터 없이는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교육 담당자 - "앗... 음... 그러면 6명당 1개의 노트북이라도 준비 가능하면 진행하실 수 있을까요!?"
갱작가 - "그렇게라도 준비해주시면 조별 실습으로 구성해보겠습니다! 혹시 학교에 와이파이는 있을까요?"
교육 담당자 - "핫스팟으로 대체해보겠습니다! 노트북을 준비해볼 테니 꼭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갱작가 - "앗 감사합니다 ㅠㅠ"
교육 담당자님의 기지와 도움으로 무사히 진행하게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 가장 베스트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이거라도 만족해야 했다.
직무교육이지만 '내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오랜만에 노베이스부터 PPT를 제작했다. (학창 시절 조별 과제할 때 언제나 PPT 제작 담당이었다. 만드는 걸 좋아한다)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커리큘럼을 구상한 건 아주 일부일 뿐, PPT 첫 페이지부터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단순히 페이스북 교육, 구글애즈 교육이 아니고 <마케터 직무교육>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광고 얘기를 꺼내는 것보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케터라는 직무를 하기 전 고민이 상당했다. 딱히 되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 내가 뭘 잘하는지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하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는 화가도 되고 싶었다가 모델도 되고 싶었다가 왔다 갔다 했다. 옛날에는 이런 내 모습이 주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갈래를 꿈꿨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중학교 직무 교재를 술술 채워나갔다.
66장의 결실, 설레는 마음
PPT를 동적으로 구성하려다 보니 60장이 넘었다. 실습과정이 있으니 이 정도 페이지면 충분해 보였다. 업무시간에 만들 짬이 도저히 안나 주말 내내 만들었다. 비록 이 작업에 성과나 보상이 따르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인 만족이 컸다. 마케팅 대행을 할 때와는 분명히 다른 설렘이랄까!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이 광고 나 알아!' 가족이나 친구에게 자랑하게 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갱작가의 말 :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직무를 아이들 눈높이로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A 개념, B 개념 다 알아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욕심을 덜고 보니 한결 쉬워지더라. 직무 교육은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하다보면 깊은 늪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