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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작가 Apr 25. 2020

셀프 원고비를 송금하는 이유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일의 강도가 다소 타이트한 마케팅 직무에 있다 보니, 업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체감상 크게 세 가지로 하루를 분류할 수 있다.  




09:00 am ~ 12:00 pm

보통 15분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출근하자마자 노트북을 켠다. 메신저 로그인을 하고, 귀여운 컵에 녹차를 우린다. 9시 땡 하면 업무 시작이 아닌, 일찍 오면 일찍 도착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내가 맡은 광고주의 광고비, 매출 등을 파악하고 상황 공유하는 회의를 간단히 한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시간을 자각하는 첫 번째 순간이다.


13:00 pm ~ 16:00 pm

일을 처리하는 순간순간 광고주의 CS가 들어온다. 마케터는 멀티태스킹의 귀재여야 한다. 혹여나 내부 회의가 있는 날은 '시간 순삭'을 경험하게 된다. (회의를 하지만, 머리 한쪽으론 밀린 업무가 떠올라 집중도가 떨어진다.) 스타트업의 경우 직무 외적인 일도 일부 담당하게 되는데, 그 일까지 처리하고 한 템포 마무리하면 오후 4시가 된다. 두 번째로 시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16:00 pm ~ 18:00 pm (=이라고 쓰고 저녁 7-8시라고 읽는다)

어느새 늦은 오후 시간이 되면서 조바심이 든다. '남아 있는 일을 어서 처리해야 칼퇴를 할 수 있을 텐데...!' 조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어느 정도 미뤄도 되는 일을 미루고, 당일 급히 끝내야 하는 일을 분류해서 진행한다. 팀원들과 항상 하는 소리가 있다. '오늘 뭘 했길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지!?' 누구나 갖게 되는 증상(?)이다. 이 타임이 가장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동시에 당황스러운 구간이다. 마지막으로 상황공유를 위한 간단 회의를 하고, 다음날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하루가 끝이 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어느새 밤 9시 즈음.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깐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씻고 나면 12시. 잠들기 아쉬워 졸린 눈을 버티다 결국 잠에 들어버린다. 이런 나날이 반복된다.


그러다 정신 차리면 일주일 - 또 정신 차리면 보름 - 되돌아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가더라. 내가 그동안 뭘 한지도 모르겠고. 되돌아보면 새하얀 도화지였다. "나는 뭘 위해서 일을 하는 거지?" 목적이 없으니 기계처럼 일을 하게 되고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해나가는 내 모습이 허탈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회사 일만 하다 보니 더욱 삶이 건조해진 것 같았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비록 초등학생 때 일기 쓰기도 귀찮아 10일 치를 늦게나마 한꺼번에 쓰던 나라도, 운동을 시작한 지 삼일을 채 못 넘기는 나라도,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는 걸로. 이왕이면 돈 되는 걸 해볼까? 남들처럼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려볼까. 블로그를 하면서 광고수익을 얻어볼까. 시작도 하기 전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었다.


뭐라도, 일단 해 보세요!


욕심을 얹힌 고민만 되풀이하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덕분에 글 솜씨가 없어도 막연히 흘러가는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다. 비록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목적은 아니지만, 글이 완성될 때마다 안 쓰던 통장에 셀프 원고비를 만 원씩 송금하고 있다. 혼자서 뭐하는가 싶다가도, 쌓여가는 원고비에 나름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렇게 브런치는 무채색이었던 내 하루를 조금씩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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