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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헌터 Aug 08. 2020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출국일

"카일은 휴가때 뭐해요?",  "저... 이번에 히말라야 다녀오려구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어쩌다가 네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오기로 결정했지?"

건너온 다리를 돌아보며 한별이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생전 처음와보는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가기 위해 끝없이 걷고 있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올 가을에 네팔 트레킹 다녀올래?



아직은 혈기왕성하다고 할 수 있는(?) 27살의 두 남자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간다. '고생을 사서 하는' 내가 이때까지 등산에 큰 관심이 없던게 오히려 이상하다 싶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이 트레킹 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의 70% 정도는 동행한 한별이 때문이다. '19년 봄 즈음에 우리는 "올해 하반기에는 꼭 네팔에 트레킹을 다녀오자."고 결심했고, 나는 그제서야 내 첫 등산화를 구입했다. 등산화는 시작일뿐. 채 신어보기도 전에 나는 무섭게 등산복과 등산스틱, 모자, 장갑을 구입했다. 함께 여행을 계획한 한별이는 이미 '프로 등산러' 였다. 한별이는 키는 나와 비슷하지만, 푸짐한 덩치를 자랑하는, 마치 개그맨 정형돈 같은 넉넉하고 착한 이미지의 친구이다. 나와 같은 대학교에서 장교 후보생(ROTC)으로 만나 친해졌고, 같은 회사까지 오게되어 더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성실한 이 친구와 함께 트레킹 여행을 한다니, 내심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사전 준비'란 명목으로 봄과 여름에 걸쳐 지리산과 청계산, 그리고 소백산을 다녀왔다. 성삼재휴게소에서 시작해 중산리로 내려오는 지리산 1박 2일 종주가 나의 본격적인 첫 등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이 처음부터 엄청난 코스를 간게 아닐까 싶다. '프로 등산러' 이면서 동시에 '프로 먹방러'였던 한별이는 배낭 가득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챙겨왔고, 대피소에서 해먹은 라면, 볶음밥, 소고기의 맛을 잊지 못하고 나는 이내 등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산은 맛있는거 먹으러 가는거다



1박 2일 지리산 종주 박살


[여행준비와 출국]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과 관련된 수 많은 블로그의 후기를 읽어보고,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준비물을 챙겼다. 한별이는 친한 부서 선배 중 한 분이 최근에 ABC 트레킹을 다녀오셔서 그 분을 통해 많은 정보를 받았다. 트레킹을 시작하는 도시, 포카라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준비물보다 더 중요한건 현지에서 함께 트레킹을 하며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를 찾는 것이었다. 가이드 없이 혼자 산행을 해도 되지만, 우리는 트레킹 경험이 많지도 않았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자칫하면 위험할수도 있는 모험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네팔은 물가도 저렴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지 가이드를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블로그를 뒤지다가, 히말라야 트레킹 가이드 '디펜드라'를 우연히 알게되었다. 디펜드라와 함께 여행하신 한국분이 좋은 내용의 후기를 작성하셨고 댓글에서 그 가이드의 카카오톡 연락처를 구할 수 있었다. 이후에 알고보니 한별에게 트레킹 정보를 알려준 친한 부서 선배도 이 가이드와 함께 트레킹을 했다고 한다. 부서 선배 역시 디펜드라가 더할 나위없이 친절했고 세심한 배려 덕분에 즐겁게 트레킹을 했다고 하여, 우리는 네팔을 가기도 전에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이드를 결정했다.

 


약발이 떨어져갈때 즈음엔 새로운 여행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여행을 통한 재충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1년에 한 번 긴 여행을 간다고 치면 여행 출발 전 6개월은 여행을 준비하고 그 날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여행이 끝난 후 6개월은 그 추억으로 버틴다. 약발이 떨어져갈 즈음엔 새로운 여행이 필요하다.


'19년 4월에 짧게 다녀온 대만 여행의 약발은 이미 초여름에 다 떨어졌고 나는 긴 여름을 보내면서 정말 간절하게 10월을 기다렸다. 비행기표를 산 이후로 몇 달 동안 나는 틈날때마다 유튜브에서 네팔 트레킹 영상을 찾아봤다. 아마 유튜브에 올라온 웬만한 네팔 트레킹 영상은 내가 다 봤을 것이다, 굳이 여행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미 다녀온것 처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출국일도 결국엔 오더라


퍽퍽하고 무료한 직장 생활 속 단비같은 2주 간의 휴가와 함께, 희망의 땅 네팔, 그리고 약속의 출국일이 찾아왔다.  내가 출장 경험이 없어서인지,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는 내 일상의 마약처럼 나를 매번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네팔행 대한항공을 기다리며...(광고 아님)


수원러 한별이와 서울러인 나는 출국 3시간 전쯤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났다. '우리 진짜 가는구나'를 연발하며 서로의 근황을 묻기 바빴고, 등산 후 기념으로 마실 술도 면세점에서 사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기다렸다. '네팔 등산가면 한국인 밖에 없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카트만두로 직행하는 대한항공 탑승객들 중에는 생각보다 네팔 현지인들이 많아서 놀랐다. 내가 떠난 10월도 네팔의 등산 성수기 시즌이라 내심 걱정을 했는데 등산하러 가는 차림새의 한국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트레킹여행이 시작되었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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