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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헌터 Aug 28. 2020

네팔 트레킹, 설렘과 두려움 사이 그 어딘가

트레킹 1일차 마큐 ~ 지누단다(1,74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정]

1일차 마큐 ~ 지누단다(1,740m)

2일차 지누단다 ~ 도반(2,500m)

3일차 도반 ~ 데우랄리(3,200m)

4일차 데우랄리 ~ ABC(4,130m)

(하산) 5일차 ABC ~ 시누와(2,340m)

(하산) 6일차 시누와 ~ 포카라(850m)


카트만두에서 하루, 포카라에서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드디어 네팔 땅에 발을 내디딘 지 3일째 되는 날에 트레킹을 출발했다. 일행은 나와 한별이,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정 전체를 조율해준 가이드 '디펜드라'와, 말이 적고 웃음이 이쁜 포터 '비스누' 이렇게 총 4명이었다. 출발하기 전날 호텔에서 우리는 미리 침낭과 겨울 패딩, 그리고 롯지에 도착해서 쓸만한 짐을 포터용 배낭에 담아두었다. 나머지 세면용품, 물, 카메라, 바람막이 등은 각자의 배낭에 직접 넣어서 트레킹 기간 동안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피해갈 수 없는 손하트 샷!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출발하다!


출발하는 날 아침, 호텔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로비에서 디펜드라를 만났다. 우리는 훈련을 앞둔 군인들 마냥 비장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했다. 5박 6일간의 트레킹 동안 호텔은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기에, 모든 짐을 갖고 나와서 체크아웃을 했고 트레킹 중 불필요한 짐은 캐리어에 담아 디펜드라의 사무실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나와 한별이는 각자 배낭 하나씩 매고, 포터 비스누는 우리의 침낭, 패딩, 식량 등등을 짊어졌다. 비스누와 디펜드라의 짐은 디펜드라의 배낭에 넣어 다녔는데 어찌나 단출하던지 요란하게 물건을 챙긴 우리의 배낭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우리가 선택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줄여서 ABC)를 다녀오는 트레킹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이다.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하긴 하지만 긴 트레킹 일정을 고려한다면, 한라산 등반이나 지리산 종주 정도의 경험과 체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ABC 트레킹에서 우리는 하루에 적게는 4시간, 많게는 7시간 정도 걸었다. 지리산 종주보다 움직이는 거리는 훨씬 짧다. 하체 근육통보다는 고산지대에서의 호흡, 장기간 트레킹에 따르는 컨디션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실제로 한별이는 ABC 정상에서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여 반나절 정도를 굉장히 힘들게 보냈었다.


ABC 트레킹 코스 중간에 푼힐 전망대를 넣어서 같이 다녀오기도 하나, 우리는 그 정도로 여유로운 일정이 되지 않았고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 관광도 하고 싶었기에 ABC 트레킹만 하기로 결정했다. 총 4일 동안 걸어 올라가서 4일째 밤을 ABC에서 묵고 다음날 일출을 본 다음, 2일 동안 하산하여 6일째 밤은 다시 포카라에서 보내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투박한 지프차를 타고 마큐로 향했다. 마큐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하는 마을이고,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마큐 전부터 트레킹을 시작하기도 하지만, 자동차 도로와 트레킹 길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처럼 지나가는 지프차가 일으키는 모래 먼지를 트레킹 내내 마셔야 한다. 그래서 ABC로 향하는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포카라에서 2~3시간 차를 타고 마큐까지 이동한 다음 트레킹을 시작한다.


마큐로 향하면서 이렇게 많은 염소떼들을 만났다


포카라의 혼잡한 시내를 지나, 서울의 동부간선도로 같은 깔끔한 길을 지나가면, 머지않아 염소 떼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비포장도로를 만난다. 염소 떼가 너무 많아 디펜드라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답이 기억이 남는다. "보통 아침에 데리고 산을 올라가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기로 이렇게 다시 농장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평소보다 지금 이렇게 많은 이유는 다사인 축제(한국의 추석 같은 큰 명절)가 곧 있을 예정이라, 저 염소들은 대부분 포카라의 시장으로 향하는 것 같다. 시장에서 팔린 염소들은 이번 축제 기간의 양식으로 쓰일 것이다." 다사인 축제는 네팔의 가장 큰 명절이었고, 때마침 우리의 트레킹이 끝나는 날부터 본격적인 연휴의 시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디펜드라가 이 다사인 축제를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집에 초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하염없이 지프차를 타고 가다 보면 수많은 산과 하천을 만난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창밖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신기해했다.  


지프차를 타고 지나가는 하천


처음엔 창 밖을 구경하고 농담을 던지면서 아주 좋은 텐션을 유지했었는데, 비포장도로를 2시간가량 지나가 보니 마큐에 도착해서 내릴 때쯤엔 속이 울렁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다들 말이 없어졌고 '그만 타고 싶다'라는 생각이 세 번째 들 때쯤, 우리는 드디어 마큐에 도착했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아래와 같이 밥과 국, 간단한 몇 가지 반찬이 나오는 네팔의 백반 '달밧'을 먹었다. 어쩜 이렇게 입맛에 잘 맞을까...  이때 처음으로 디펜드라와 비스누와 밥을 먹었는데, 디펜드라는 우리처럼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했지만 비스누는 손으로 밥을 먹어서 사실 적잖이 놀랬다. 쌀 자체가 찰기가 없어 손으로 먹기 힘들 것 같았는데, 비스누는 국을 밥에 부어 잘 뭉쳐지게 한 다음 초밥을 만들듯이 밥을 뭉쳐서 먹었다.


트레킹 에너지의 원천, 달밧


밥 먹고 소화시키면서 그려보는 네팔의 소(말인가?)


그렇게 점심으로 에너지를 채운 후,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드디어 트레킹을 출발했다. 아직까지는 경치가 한국의 지리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머나먼 네팔까지 와서 이렇게 준비를 해서 트레킹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이 되었다. 그동안 나의 해외여행은 건축물과 음악, 와인, 맛집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면 이번 나의 네팔 여행은 너무나도 다를 것이다. 사색과 체력적 도전, 풍경과 자연으로 채워지는 여행은 어떨지 기대되었다. 출발한 지 머지않아 트레킹 기간 중 가장 높고 긴 다리를 만났다. 사전에 유튜브 영상과 후기를 보고, 이런 다리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만났고, 생각보다 훨씬 무서웠다. 디펜드라가 이 다리 덕분에 수 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게 되었다는 설명을 해주었지만, 제발 무너지지 않길 바라면서 연신 '우오... 와우!' 이런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건넜다.


협곡을 잇는 웅장한 다리



다행인 것은 오늘 목적지인 지누단다까지는 상당히 가까웠다. 첫날이니 만큼 무리하지 않고 걷는 일정이었고, 또 지누단다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다고 하여, 저녁을 먹기 전에 가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걸으면서 나와 한별이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디펜드라, 비스누와 이야기했다. 디펜드라는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한국인들을 가이드해본 경험이 이미 많았고 트레킹에 필요한 대부분의 한국말을 숙지하고 있어서 놀랬다. 3개 국어(네팔어, 영어, 한국어)를 섭렵한 데다가 심지어 네팔의 교육 격차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대학원과 이 트레킹 회사까지 운영을 하고 있었다. 디펜드라와 대화하면서 스스로 자극도 많이 받았고, 이 친구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더 성장할지 궁금해졌다. 트레킹을 하면서 일행들과 터놓고 여유롭게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에 아래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동물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발로 차이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히말라야 산맥 속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반나절 정도 트레킹을 하니 지누단다에 도착했다. 롯지에 짐을 풀고 우리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다음 계곡을 따라 쭉 내려가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까지 가까운 줄 알았는데 내리막길을 부지런히 30분은 넘게 가야 했고 슬리퍼를 신고 간 것을 조금 후회했다. 깨끗하게 씻고 숙소도 다시 오르막길로 돌아오니 결국 또 땀범벅이 되었다. 뭐 어떤가? 이런 히말라야 산맥 속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인 것을... 방수가 되는 고프로를 이용해 셀카도 찍고 놀면서 짧은 첫날의 피로를 다 풀어낼 수 있었다.



중국식 볶음면부터 치즈피자까지, 없는 게 없는 롯지

샤워를 끝내고 다시 롯지로 돌아와 한상 가득 저녁을 먹었다. 롯지(lodge)는 트레커들을 위한 숙소를 뜻하며 트레킹 코스 내내 만날 수 있다. 롯지에서는 식당을 함께 운영을 하는데, 대부분 숙박비보다는 이 식당 매출을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고 한다. 숙소는 2인실 ~ 4인실까지 게스트하우스 형태이며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추고 있다. 해발고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와이파이 전기 충전을 유료로 제공한다. 통상 방 안에는 전기 콘센트가 없고 와이파이, 전기 충전 모두 롯지의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가 한국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밥 먹기 1시간 전쯤 가이드를 통해서 미리 주문해두고 숙소나 식당에서 쉰다. 식사가 다 준비되면 가이드가 우리에게 알려주어 저녁을 먹는다. 전 세계 다양한 트레커들이 네팔을 방문하기 때문에 롯지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 네팔 현지식은 물론, 중국식 볶음면부터 치즈피자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주방은 열약해 보이는데 이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할 정도이다. 물론 힘든 트레킹을 마친 트레커들한텐 뭘 던져줘도 맛있게 먹을 것 같았다.


달밧, 중국식 볶음면, 만두와 한국에서 챙겨온 밑반찬까지... 3인분 같지만 2인분이다



만찬을 즐기고 우리는 디펜드라와 비스누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장난기 많은 가이드 디펜드라는 친구처럼 재미있게 우리를 대해주다가도 우리의 몸 상태와 다음날의 일정을 설명해줄 때에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던 친구라 요즘도 자주 연락하고 지낸다. 언젠가 디펜드라와 비스누가 한국에 놀러 온다면 꼭 이 곳의 산을 데려가 주고 싶다. 산 정상에서 한국 라면의 맛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디펜드라에게 내일의 일정을 듣고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긴 거리를 걸어서, 해발 2,500m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부디 자고 일어나서 아픈 곳이 없길 바라면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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