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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헌터 Aug 09. 2020

한국의 속도를 기대하지 말자

네팔 카트만두에서의 첫 날

인천-카트만두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유일해서 그런지 비행시간에 비해 표값이 비쌌다. '조금만 더 보태면 유럽행 비행기값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를 아끼고자 경유편을 알아볼까 고민했지만, 트레킹 후 피곤한 몸으로 귀국편 비행기를 오래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돈 못지않게 시간도 소중한 직장인들이었기 때문에 직항편을 타기로 결정했다. 피곤한 여행이 될테니 비행기라도 편하게 타자는 마음으로...


네팔 트레킹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직항편을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여행 경비는 한정되어있고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네팔 현지에서 돈을 쓸일이 많이 없을 것이다. 물가 저렴한 나라인데다가 아침먹고 걷고, 점심먹고 걷고, 저녁 먹고나면 더 돈을 쓸 곳도 없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고산병 위험 때문에 술을 마시기도 어렵다. 히말라야의 자연을 만끽하는데 큰 돈이 들지 않으니, 고생한 몸은 직항편 비행기로 달래주면 좋겠다.


사와디캅 아니고, '나마스테'


인천에서 4시간 30분 비행이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다. 비행기를 내리면 보통 탑승교(보딩 브리지라고도 하는, 비행기와 공항을 잇는 다리 모양의 통로)나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카트만두 공항은 규모가 작고 시설이 열약해서인지,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탑승교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와, 공항까지 걸어서 들어가도록 되어있었다. 연신 "이게 뭐야?"를 외치며 네팔 도착을 인증하는 기념샷을 찍었다.

사와디캅아니고, '나마스테'


[끝없는 기다림]

우리는 오후 5시 30분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고, 사전에 미리 연락해둔 네팔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공항 키오스크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입국심사만 받으면 된다! 이메일로만 연락하 현지 가이드 디펜드라를 만날 생각에, 얼른 네팔 현지 음식으로 첫 저녁을 해결할 생각에 우리 둘은 신나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술은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별이와 나는 120%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었기 때문에, 공항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았다.



그런데...


네팔 여행에 인내심과 여유는 필수적




'나마스떼' 인증샷도 찍고 공항을 구경하느라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 중 입국 심사줄 마지막에 섰다.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독자분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면 뒤도 돌아보지말고 입국 심사줄로 전력질주하길 바란다...


네팔의 입국 심사 프로세스는 아주 느렸다. 30분을 기다려도 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이렇게 오래걸리는거야? 배고파 죽겠네.' 30분은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4명의 공항 직원이 입국 심사를 진행했는데 그 중 1명이 갑자기 퇴근해버리는게 아닌가... 나는 3번 게이트에 서있었는데 4번 게이트 직원이 그렇게 자리를 비우면서, 우리 게이트는 옆 4번 게이트의 입국자들까지 번갈아가며 같이 심사를 하게 되었다.

네팔에서 한국의 속도를 기대하지말자


공항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디펜드라에게 너무 미안하여 문자를 남겼는데, 디펜드라는 마치 이정도의 지연은 예상했다는 듯이 천천히 나오라는 답을 했다. 결국 공항 도착 후 3시간 만에 우리는 입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짜증이 났다. 설레는 마음은 사라지고 빨리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뭐라고 입에 집어넣고 싶었다. 너무 배고팠고 피곤했다.



[디펜드라와의 만남]

공항 밖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수 십 대의 자동차가 동시에 뿜어내는 경적소리와 숨이 턱 막히는 매캐한 공기, 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고함소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공항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카트만두의 탁한 공기는 내가 여태 느껴본 대한민국의 미세먼지와는 달랐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나를 감싸고 도는 느낌이었고, 밖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목이 간지러워 잔기침을 계속했다.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인도 출장을 다녀온 회사 선배님이 묘사해준 그 나라의 도시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어렵지않게 가이드 디펜드라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친구는 환영의 의미로 흰 스카프를 우리에게 둘러주었다. 작은 얼굴에 큰 눈을 가진 디펜드라는 생각보다 어려보였고(20대 후반?) 탁한 공기와는 정반대인 순수한 웃음으로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입국 심사로 인한 짜증은 눈녹듯 사라졌고, 디펜드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호텔까지 갔다.

환영의 의미로 받은 흰 스카프
어지러운 교통질서, 매캐한 공기, 정말 내가 네팔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은 오래되고 칙칙한 모텔의 느낌이었지만, 더블이 아닌 싱글 베드가 2개인 점과 따듯한 물이 잘 나오는 것에 만족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와 여행을 하더라도 침대는 따로 쓰는게 좋으니까... 이 부분 역시 한별이와 나는 120%의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방을 대충 확인하고나니 이미 밤 10시였다. 호텔 근처 문 열린 식당 중 구글 리뷰가 적당히 있는 곳을 찾아들어가 커리와 모모(네팔식 만두)로 첫 식사를 해결했다. 밤 10시에 먹으면 뭔들 맛이 없으랴... 우리는 이틀 굶은 들개마냥 저녁을 흡입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다른 식당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사들고 숙소에서 후반전을 시작했다. 물론 맥주와 함께...


포크를 뒤집어 쓰는 것 보니 한별이는 이미 현지화가 다 된 것 같다


5시간의 비행과 3시간의 입국 심사 때문에 정말 피곤했다. 다음날 새벽에 본격적인 트레킹의 출발 도시인 포카라로 떠나야 했기때문에, 카트만두를 더 즐기지 못하고 빨리 잠을 청했다.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들리는 이국적인 억양의 언어와 오토바이 엔진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때문에 금방 잠들지 못했다. 나와 한별이의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여행은 그렇게 조금은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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