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뀨우 Oct 12. 2020

틀림없다. 여긴 분명 맛집이다.

2020년 9월 열사흘의 단어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하나 싶어 구글맵으로 집 주변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봤다. 외식을 잘 안 하기도 하고 외식을 하더라도 매일 가던데만 가서 몰랐을 뿐, 조금만 발품을 팔면 집 근처에 음식점이 몇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장성'이라는 중국집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중국요리는 전혀 다른데, 사진에 올라온 자장면이 한국 자장면 비스무리한게 맛있어 보였다. M은 외출했는지 주차장에 차가 없길래 K와 둘이 가기로 했다.


지난주였던가, 태풍이 지나가고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더니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나는 반팔에 반바지, K는 반팔에 긴청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K는 춥다고 했다. 반팔, 반바지가 딱 좋은 이 시기가 정말 좋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이 동네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길거리에 사람이 적었다. 어쩌면 모두 차로 다니기 때문에 애초에 걸어다니는 사람이 적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강 위로 놓은 다리를 앞두고 길은 살짝 경사를 이루고 있다. 오른편엔 써니마트가 있는데 차로 다닐 때 보다가 걸으면서 보니 집 뒤에 있는 마루나카보다도 훨씬 커보인다.


큰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 곳에 장성이 있다는데, 장성은커녕 사람이 걸어도 되는 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둡고 인적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조금 걸으니 멀리서 흰색 간판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고 그 안에 노부부가 식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오늘 장사는 마감한 것이 아닌가 싶어 물어보니 들어오라고 하신다. 칠십을 넘긴 것은 분명해보이는 노부부, 오래된 가게 디자인과 가구. 그리고 메뉴를 적어놓은 색색의 종이는 빛이 바랐고 가게 한쪽엔 드래곤볼과 다른 만화책이 책장에 아무렇게 꽂혀있었다. 틀림없다. 여긴 분명 맛집이다.


할머니는 물과 손수건을 갖다주면서 메뉴를 정하면 부르라고 한다. 나는 중국집에서 언제나 마파두부를 먹지만 오늘은 자장면을 먹어야겠다. K는 볶음밥을 먹기로 했다. 주문을 하려고 할머니를 부르는데 못 들어서 다시 불렀다. 자장면에 오이를 빼달라고 하니 양상추는 괜찮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가게는 낡은 것도 낡은 거지만 그닥 청결하지 않았다. K의 컵에는 날파리가 둥둥 떠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맛집의 증표로 치부했다.


볶음밥이 먼저 나왔다. 엄청 맛있냐고 묻는다면 음 하고 바로 답은 못하겠지만 분명 계속 숟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맛이었다. 곧이어 자장면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혹시 한국과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빛깔이었다. 맛도 일품이었다. 과연 음식잡지에서 소개할 법하다. K는 한 입 먹어보고는 딱 내가 좋아할 맛, 그러니까 달달하면서 진한 맛이라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K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일본인과 식사를 하면서 위안부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은 일본과 2015년에 합의를 해놓고도 왜 또 정권이 바뀌니까 사죄하라고 하냐고 했다는 것이다. 위안부, 징용공, 1965년 국교정상화. 나는 열심히 한국을 대변했다.


볶음밥은 650엔, 자장면은 700엔이었다. 나는 계산하면서 정말 맛있었다고 인사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오이 싫어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하니 주인 할머니가 잔돈을 거슬러주면서 오이 빼달라는 사람이 많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또 오고 싶은 가게였다. 하지만 K는 가게가 깨끗하지 않아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혼자서 와야겠다. 우리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중국요리 : 中華料理(ちゅうかりょうり)
마파두부 : マーボー豆腐(とうふ)
볶음밥 : チャーハン(炒飯)


매거진의 이전글 일주일을 남겨두고 꽤나 갑작스럽게 섭외 요청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