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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Nov 13. 2020

여기서 의도치 않게 내 짬바가 나오는구나.

2020년 11월 나흘날의 단어들

이번주부터 쿨비즈 기간이 끝나고 웜비즈 기간이 시작됐다. 10월에 쿨비즈? 할 수도 있겠지만 위도가 제주도와 비슷한 고치는 10월에도 제법 따뜻하다. 쿨비즈 기간에 남직원들은 폴로셔츠에 면바지 차림으로 편하게 출근할 수 있는데, 다만 우리 조직에서 쿨비즈 복장과 기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나만 10월 마지막 출근날까지 꿋꿋하게 쿨비즈 복장을 유지하다가 드디어 오늘, 누가 봐도 회사원인 차림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변신을 보고 몇몇 사람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R과 만나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얼마 전 호주 드라마 플리즈 라이크 미를 보면서 생각한 것을 얘기했다. 주인공 엄마가 숨바꼭질을 하면서 친구와 함께 덤불 속에 들어가 숨는데 '거미가 있을지도 몰라!' 하며 걱정했다. 각종 벌레와 곤충을 극혐하는 나라면 '벌레가 있을지도 몰라!' 했을 텐데 그중에 거미를 콕 찝은 것은 호주 특유의 환경이 반영된 대사가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호주에서는 거미가 상당히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다. R은 여러 거미를 설명해줬는데 그중 가장 싫어하는 거미는 호러영화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벽 너머에서 용수철처럼 구불구불한 입을 반대쪽으로 쭈욱 내밀어 무는 거미인데, 더 무서운 것은 벽 너머에서 이쪽을 보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 얼굴을 기억하기 때문에 섣불리 잡으려다가 실패하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호주의 매력도가 20 정도 감소했다. 그래도 역시 언젠가 한 번 호주엔 꼭 가보고 싶다.


집에 돌아와 K가 내일 버릴 가구를 집 밖에 내놓는 걸 도와줬다. 찬장과 접이식 식탁을 버리고 싶다고 했는데 접이식 식탁은 아깝다고 하니 고민 좀 해보겠다며 찬장만 옮기기로 했다. 나는 찬장을 옮기기 전에 유리 미닫이 문을 떼고 서랍을 테이프로 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K는 이사를 많이 다녀봤냐고 물어봤다. 아, 썩 달갑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의도치 않게 내 짬바가 나오는구나.

이자카야 [春夏冬 あきない] 춘하동 가을 없음(질리지 않음)


クールビズ:쿨비즈(Cool Business)
虫(むし):벌레
引っ越し(ひっこし):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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