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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Oct 21. 2020

나부터 바들바들 떨면서 바다에 몸을 담갔다.

2020년 10월 보름날의 단어들

민박집 구로우사기의 장점을 꼽아볼까. 첫째,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가 정말 친절하다. 얼굴에 항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둘째, 새로 지은 집인지 상당히 깔끔하고 온천수는 아니지만 욕조도 좋다. 셋째, 시골인지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별을 보기에 더없이 좋다. 그리고 하나를 더 꼽자면 바로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밥이다. 숙박을 하게 되면 저녁과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어서면 인원수에 맞춰 갖가지 반찬과 된장국이 담긴 나무 쟁반이 놓여 있다. 아무리 같은 고기라지만 육고기 대신 물고기인 것은 내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여러 식자재로 만든 요리와 후식 그리고 입가심 할 차까지 정성스럽게 한 상 차려져 있다. 청나라 황제가 먹었다는 만한전석이 어떤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로우사기전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중에서 또 백미가 무엇이냐 하면 쌀밥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두툼한 천으로 덮인 큼지막한 무언가가 식탁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게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이 천을 걷으면 육중한 도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뚜껑을 열면 밥만큼이나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지난번 3월에 왔을 때와는 달리 이번엔 때를 잘 맞춰서 온 덕분에 올해 갓 추수한 햅쌀로 밥을 지었다고 한다. 이 맛있는 밥을 오늘은 일부러 적게 먹고 아주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조금은 남겼다. 오전에 다이빙을 예약해놔서 아무래도 지난번 왔을 때처럼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나는 료마 패스포트라는 관광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어서 숙박 선물로 도부로쿠라는 탁주를 받을 수 있었는데, 원체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받아도 다 마시지 못하고 버릴 것 같아 사양하니 직접 캐온 고구마를 챙겨주셨다. 알쓰인 나한테는 예쁜 병에 담긴 탁주보다도 흰 비닐봉지에 담긴 못생긴 고구마가 훨씬 낫다. 고구마까지 트렁크에 싣고 차 시동을 걸려고 하니 이번엔 아저씨가 다이빙하는 곳까지 빨리 갈 수 있는 산길 입구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잠시 구글맵을 끄고 아저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미하라촌을 빠져나왔다. 산길이라고 해봤자 좁고 험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이차선 도로로 쭈욱 이어진 길이었는데, 아저씨가 굳이 이 길을 알려준 것은 길이 빠른 것도 빠른 것이지만 산을 넘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꽤나 볼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구글맵에서는 어느 길이 떠 빠른지 알려줄지는 몰라도 어느 길이 계절을 느끼고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쓰쿠시 다이빙 센터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혼자서 분주하게 체험 다이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이빙 관련 설명과 주의사항을 듣고 곧바로 웨트수트로 갈아입은 뒤 항구로 향했다. 사장님은 직접 키를 잡고 수심이 얕고 산호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작은 배를 몰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배에 매달린 뒤 퐁당하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모두들 겁이 많은지라 그나마 수영도 할 줄 알고 다이빙도 해본 적 있는 나부터 바들바들 떨면서 바다에 몸을 담갔다. 모두 바다에 들어온 다음에는 잠수, 수경에 들어온 바닷물 빼기, 호흡기 뗏다가 다시 물기 연습을 했다. 나는 예전에 다이빙을 했을 때 계속 코로 숨을 쉬는 바람에 바닷물이 코로 들어가 패닉이었는데 이번에도 같았다. 다이빙이고 뭐고 아무래도 못할 것 같아 스노클링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했는데 다들 한 번만 더 연습해보자고 해서 다행히 극복할 수 있었다. 체험 다이빙이고 하고 K와 S가 헤엄치는 것이 영 불안해서 깊은 곳에 들어가진 못하고 얕은 곳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끝없는 산호 군락이나 형형색색의 열대 물고기들은 보지 못했지만 무사히 다이빙을 했다는 것, 오랜만에 물 속에 들어와서 헤엄친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사장님이 K와 S를 이끌고 배로 다가갈 때는 다이빙이 끝나구나 싶어 못내 아쉬웠다.


다이빙 센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다시 고치 시내를 향해 출발했다. 시내에서 나오는 운전이 점점 쉬워지는 것이었다면 시내로 들어가는 운전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긴장했지만 어제만큼은 아니었다. 언제나 걸어서만 다녔던 시내 중심 하리마야바시 사거리를 다른 차들과 전차에 섞여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사히 주유소에 도착하니 곧이어 E의 남편이 마중을 왔다. 나는 여행을 잘 다녀왔다가 아니라 살아서 돌아왔다고 인사를 한 뒤 남편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 다녀오길 잘 했다.


味噌汁(みそしる):된장국
新米(しんまい):햅쌀
くねくね:구불구불


민박집 : 「くろうさぎ」

http://www.kochi-shokokai.jp/mihara/doburoku_guest_house/kurousagi.php

스쿠버다이빙 : 「竜串ダイビングセンター」

http://www.tdc200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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