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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Oct 22. 2020

읽지는 않더라도 책을 고른다는 것은 즐겁다.

2020년 10월 열엿샛날의 단어들

일요일 행사에서 겸사겸사 한국 책도 소개하고자 도서관에 책을 고르러 갔다. 읽지는 않더라도 책을 고른다는 것은 즐겁다. 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서가에서 빌릴 책을 고르는 것은 마치 가게 진열대 앞을 서성이며 진열된 물건을 이리저리 만져보거나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것처럼 소소한 기쁨이다. 먼저 3층에서 한국어로 된 한국 책을 골랐다. 현립 도서관과 시립 도서관을 함께 운영하게 되면서 도서관이 더 알차졌다고 느끼는데, 특히 내가 주문한 한국어로 된 한국 책들이 만주벌판의 광개토대왕처럼 서가에서 그 면적을 넓힐 수록 고치현의 시민복지와 사서들의 근면성실함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한국어로 된 책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규슈편 그리고 내 사심을 조금 담아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을 책 카드에 담았다. 그리고 2층으로 이동해서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책은 김려령의 완득이, 박경리의 토지, 정세랑의 책 정도를 골라담았다. 일본어로 번역된 해외문학 코너에 가면 중국은 시기별, 장르별로 구분을 해놓았지만 한국은 동양문학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왜 한국은 따로 분류하지 않고 동양문학으로 뭉뚱그려 놓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M 사서는 이미 내 한국 사랑을 지극히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김영하의 책이 없어서 검색해보니 대출중이란다. 아 한국책을 읽는 사람들이 진짜 있구나!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손원평의 아몬드. 모두 서가에 없었다. 내가 당장 책을 고르지는 못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치과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K에게 저녁을 먹었는지 연락하니, 지금 중국 라면을 끓이고 있다며 얼른 오라고 해서 사양 않고 면이 불기 전에 냉큼 달려갔다. 라면에 숙주나물, 배추, 두부를 넣어 냄비 가득하게 끓였는데 이렇게 먹기만 한다면 라면이 꼭 건강에 안 좋다고만은 못할 것 같다. 라면을 먹으면서 K가 보고 있던 중국 방송을 같이 봤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간간히 아는 단어가 들리면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출산 전 버전이라고 할까? 임신한 네 쌍의 부부의 일상을 보여줬다. 윤식당을 배꼈다고 해서 말이 많은 중식당도 봤다. 코로나 이후 여름에 촬영한 방송이었는데, 연예인들이 우한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었다. 다만 방송을 보는 동안 영 보기 불편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우한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그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든 연예인들은 마스크를 벗고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그러했다. 중국에서 20년 이상 장수하고 있다는 예능을 보다가 하품이 나오기 시작해 추석 때 받은 월병을 하나 받아서 집에 돌아갔다.


積読(つんどく):책을 쌓아만 두고 읽지 않는 것
遠慮(えんりょ)する:사양하다
もやし:숙주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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