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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mz Jun 27. 2022

최인 기타 리사이틀 'MUSICSCAPE' 후기

숲속의 작은 연주회


일부러 일상에 틈을 내어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쳇바퀴 처럼 돌아가는 날들 사이에 생기는 짧고 귀한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하릴없이 흘려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오프라인에서의 직접 체험보다 온라인에서의 간접 체험을 선호하게 되고, 호흡이 긴 글을 읽는 것을 피곤하게 여기며 짧은 글, 영상에만 손이 가는 날들이 계속되며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하며 일상의 한구석에 문화 예술을 위한 자리를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며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사유하게 되었다. 사유하는 시간들은 나를 평안 속에 있게 했고, 시야를 넓혀주었고 나를 더 성장시켰다. 


최인 기타 리사이틀 'MUSICSCAPE'에 가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무언가를 하나 끝내도 그다음으로 해야 할 것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그래서 마음에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는 날들 사이에 숨구멍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문화 비축기지로 향하게 되었다.   


 

예전에 한 음악 예능을 보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버스킹 공연의 무대가 되는 공간이 인상적이어서 그곳이 어디인지 따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곳은 바로 이번 공연이 열린 문화 비축기지였다. 


문화 비축기지는 폐산업시설이 되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재생하여 만들어진 문화공원이라고 한다. 기존의 5개의 탱크(T0~T5)가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하나의 탱크(T6)는 새롭게 지어져 정보교류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 문화 비축기지 공간에 대한 설명은 문화 비축기지 웹사이트를 참조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공연이 진행된 T1 파빌리온은 석유비축기지 시절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를 해체하고 유리로 된 벽체와 지붕을 얹어 공간 내부에서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실내 공간이지만 바깥의 자연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이 공간은 그 안에서 펼쳐지는 공연, 전시 활동의 매력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공연 시간 보다 한참 일찍 도착해서 문화 비축기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날이 흐렸지만 나름 운치가 있었다. 문화 탱크와 함께 꽃과 나무를 비롯한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공원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는 듯했다. 공연을 감상하기 전 가벼운 산책을 하며 어수선한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공연을 감상할 준비를 마쳤다. 


 


SETLIST 


< 1부 >

바다

바람과 나


< 2부 >

감포 앞 바다에서… / 기타피리 이중주

가던길 / 기타피리 이중주

Blue hour



최인 기타리스트는 연주하기 전 관객들에게 친근한 말투로 곡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의 말투와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소박함이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편안하게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여행, 특히 캠핑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곡들이 여행을 하며 자연 속에서 연주자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연주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참고하며 연주를 듣고 있으니 그가 보고 느낀 풍경들을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연주를 감상하며 간략하게나마 나의 감상을 기록해두었다.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이 있었던 두 가지 곡에 대해 기록한 메모를 꺼내어 보자면, 

 

산/ 산행을 하며 느끼는 것들, 볼 수 있는 풍경을 묘사한 곡이라고 함.

상승의 에너지와 리듬감이 마음에 드는 곡이었다, 이날 연주했던 곡들 중 가장 밝고 명랑하다. 암벽과 나무들에 둘러싸인 오늘의 공연장은 이 연주를 감상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 아닐까. 마침 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마저도 이 곡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함께/ 앙코르곡.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곡이라고 함.

첫 소절부터 ‘함께’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함이 확 느껴졌다. 피리와의 이중주 곡을 제외하고는 오늘 연주한 곡 중 가장 감정이 들어간 곡처럼 다가왔다. 가사가 없는데도 연주가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어떤 시련이 와도 묵묵하게 함께 있어줄 것 같은 믿음, 고마움, 따듯함이 느껴지는 곡이다.  



목소리와 가사 없이 오직 연주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표현한다는 게,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풍경을 그려내고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공연을 관람할 때 완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혼자만의 강박이 있어서 가끔은 관람 도중에도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나의 악기 한 명의 연주자에게만 집중하면 되어서 다른 공연을 볼 때보다 피로가 덜했다. 


통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자연의 만들어낸 풍경 역시 이 공연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개를 살짝 들면 보이는 하늘, 공연장을 둘러싼 암벽과 초록의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숲속의 작은 연주회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연주자의 유튜브와 SNS 계정을 팔로우하면 엽서를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엽서 모으는 걸 좋아해서 바로 이벤트에 참여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엽서 한 장을 골랐다. 이 엽서들은 최인 기타리스트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너무 멋진 사진들이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본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또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고 연주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 좋은 생각과 기운이 닿게 하는 일. 


그것이 예술가의 일이고 삶인가!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하며 많은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변화는 문화 예술로부터 꼭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최인 기타 리사이틀>도 느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순간 그 공간에 담겨있을 수 있었다.   


일상의 한 부분을 예술 문화를 향유를 위해 쓰는 것은 내가 할애한 시간 보다 더 큰 가치를 나에게 안겨다 준다. 또, 이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 이 글의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0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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