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내가 요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계속 노크를 하는 듯한 날들을 지나고 있어서 이 제목이 나에게 깊숙이 파고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답장을 쉽게 보내주지 않는 삶 앞에 선 나는 이 책을 쓴 작가는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로 시작하는 문장을 어떻게 완성시킬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슬픔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슬픔을 믿어주면서, 우리는 곁에 있다."
타인은 당연히 나의 불안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 테고, 가끔은 유별나게 그것들을 크게, 오래 느끼는 것 같아 나조차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모든 이의 삶에는 각자 모양의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의 슬픔은 왜 숨겨지지도 않는건지 하늘을 원망하곤 했다.
"불안이 우릴 잠식할 힘은 사실상 없다. 불안은 뿌리가 없으므로, 내 단단한 토양에 박힌 풀과 꽃 사이를 흘러 다닐 뿐이다. 이따금 부는 바람처럼." (p38)
슬픔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오래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김해서의 문장들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슬픔을 피하지 않는다. 또렷하게 응시하고 고찰한다. 그녀가 고른 어휘와 만들어낸 문장은 구체적이고 예리하다.
그녀의 문장을 통해 분명 전에 이미 비슷하게 느껴본 감정과 생각들을 다시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백지 위에 있을 때, 고독은 나를 궁지로 몬 적 없다. 그저 '나'이게끔 한다. 백지 위에 있을 때,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처럼 나는 흘러간다. 내 손을 거치는 것들 중 딱 나만큼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글쓰기가 유일하다."(p87)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고백에 가깝지만 나는 늘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다. 써놓고 누군가에게 내보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보고 묻힐, 혹은 버려질 글이 될 수도 있음에도, 내 안에서만 부유하던 생각들이 밖으로 나와 형체를 갖게 되는 순간 누군가가 그것을 보게 될까봐, 나의 보잘 것 없는 부분들이 들통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글 뒤에 자꾸 숨으려 했다.
노트북의 텅 빈 화면 앞, 쓰기 위해 초라한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을 작가는 나보다 훨씬 용기 있게 마주했음을 그녀의 문장에서 느낄 수 있다. 머지않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계속해서 편지를 보낼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나도 답장이 없는 삶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때론 나에게로 먼저 뚜벅뚜벅 걸어와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어떤 사람, 어떤 글은 그냥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이 마주한 감정, 사람 그리고 풍경을 섬세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적어내려 간 일기 같은 그녀의 글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 위로와 용기로 남는다.
그녀가 쓰는 시가 기대된다. 하루빨리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김해서 산문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에 대한 리뷰를 마친다.
* 이 글의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