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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mz Dec 02. 2022

책 리뷰:: 이승우 <이국에서>


제목을 보고 자연스럽게 내가 이국에서 보낸 시절을 떠올렸다.



불안과 의문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유학은 그 나라 언어를 어렸을 때부터 오랜 기간 배워 온 나에게 하나의 추가 옵션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마지막으로 딱 한 장 남은, 다른 걸 고를 수 없어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뽑아들어야 하는 카드였다.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아주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중하고 싶었지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지못해 떠밀리듯 이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서 5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도 오랫동안 그 시절을 떠올렸다. 나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럴 필요가 있었다. 심리 상담사에게 그 시절에 대해 꺼내어 보았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의 이국에서의 삶 안으로 다시 들어가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이승우의 장편소설 <이국에서>를 펼쳐 들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다

"그래서 그의 자루는, 그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언제나 가득했다. 가득한데도 충분하지 않아서 늘 허둥거렸다. 자루 속에 가득한 그것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는 말할 수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가득 채운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중요했으니까."  (9p)



황선호는 한 광역시장의 최측근, 선거 캠프의 중심인물로서 시장에게 충성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관성적으로 자신의 자루를 채우는 것에만 몰두했던 삶, 중요한 것들이 급한 것들에게 밀리는 삶을 살아왔던 그는, 선거를 앞둔 시장의 뇌물 관련 이슈를 덮기 위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보보라는 도시로 가게 된다. 물론 그것은 그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는 보보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상태를 텅 빈 자루에 비유했다. 그가 살았던 광역시에서 채운 것들은 이곳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는 거처도 없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외부인의 신분으로 도시를 떠돈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황선호는 자신이 이곳으로 온 것이 마냥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을 더듬어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의 흔적을 찾는다. 또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보보에서 그는 관성적으로 채우던 것들을 비우고 비로소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들이 시급한 것들보다 후 순위로 밀리는 삶을 살던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발견한 삶의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고 비로소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에 가까워진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해


원하는 것을 하라는 황선호 모친의 말은 김경호와 황선호 두 사람에게 닿아 그들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든다.



원하는 것을 하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지만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은 그리 쉽고 간단하지 않아서 원한다고 해서 다 할 수도 없음에 좌절하기도, 또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내 마음에서 샘솟은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된 것인지 헷갈려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하라’는 누군가의 말은 큰 용기가 된다.



존재와 삶에 대해 고찰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과정을 평생에 걸쳐 계속해 나갈 것이다. 보보에서의 황선호의 삶은 그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래 머물고 싶은 정착지를 향해 가는 삶


"머무르거나 떠돌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 
그 무한성에 대한 마스터피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내가 타국에서 보낸 5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온 평생에 비하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존재와 삶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국으로 돌아와서도 떠도는 삶은 계속되었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진 상태로는 나는 영원히 외부인으로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삶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 낯섦이 예전만큼 나를 불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어딘가에 속하고, 꿈을 꾸고 또 좌절하며 그렇게, 언젠가는 오래 머물고 싶은 정착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계속해서 떠돌 것이다.




* 이 글의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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