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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n 15. 2021

프롤로그 / 중국

낯선 설렘 : 중국

#출간서적 #설렘FromChina #감성현 #중고책 #도서관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돈이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씩 꼭 마시는 사람들이, 

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고 말할 때마다, 

속이 좀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써주세요.

라고 웃으면서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분명. 

그렇게라도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고 읽어주니까. 


어쨌든, 이미 절판이 되었고

도서관에서 언제든지 빌려볼 수 있는 책이라면, 

내가 내 공간에 업로드를 해놓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이젠 돈 주고도 못 사고, 

돈 주고도 읽을 마음이 없는 것 같고, 

돈이 없는 사람들도 편하게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동안 출간했던 여행책들을 차근차근 재정리하면서 올려보려 한다. 

 




그러니까,

처음 해외여행을 시작한 건 2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난,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장거리 여행, 아니 단거리 여행도 크게 생각해보지 않던 '집돌이'였다. 


여행의 맛을 알아버린 지금도 난, 

'집돌이'인 나와 '떠돌이'인 나 사이에 늘 갈등을 할 정도로 집돌이 성향이 강하다.


슈퍼 울트라 집돌이인 내가 (여행은 아니지만) 먼 해외로 떠났던 건, 

첫사랑에 실패하고 그녀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는 게 힘겨워

도피하듯 필리핀으로 떠난 영어연수의 몫이 컸다.


그녀의 부모님과의 인사 자리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내게 했던

'그래, 자네, 영어는 좀 하나?'

라는 말이 내내 가슴에 상처가 돼 떠난 영어연수였다. 


실연의 아픔으로 사회생활까지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난,

그렇게 사회생활 시즌1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보란 듯이 영어의 대가가 되어 돌아오리라 다짐하며 떠났다. 


하지만, 

원래 공부랑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수능에서 영어영역 점수가 10점 정도였던 내가, 

영어연수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댔지만, 

얼마나 공부에 충실했을 리가 없다. 


고작 2개월 정도, 공부하는 흉내를 좀 냈었나?

그 후로 필리핀에서 1년 넘게 지내긴 했는데, 공부다운 공부를 한 건 초반 2개월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 2개월의 공부로 무려 1년 넘게 잘 지냈으니,  


영어가 그렇게나 쉬운 언어인지 내가 무지 똑똑한 건지, 

아니면 누구나 2개월이면 대충 의사소통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아무런 소통의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렇게,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끝낼 무렵에는, 

첫사랑의 아픔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덤덤해졌고, 

더 괜찮은 친구와 연애 아닌 연애도 했으니, 

내 인생을 돌아보면 그때가 참 생각 없이 즐거운 나날이었다 싶다. 


아무튼, 필리핀에 있으면서 루손섬 일주를 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도 차차 하게 되겠지만, 

이 일주를 통해, 나의 여행 세포가 각성했던 게 틀림없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 사회생활의 시즌2를 마무리할 무렵. 

난 다시 한번 장거리 해외여행을 그렸다. 


중국을 택한 건 큰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예산이 맞았고, 사회생활 시즌1 때 장기 출장으로 상해에서 일을 했었던 경험도 있어서다. 

게다가 필리핀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마침 중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렇게 북경(베이징)을 시작으로 마카오까지 연결하는 긴 루트를 짰다. 


이 중국 여행을 내 첫 해외여행이라고 하는 건, 

이때부터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배경에 꼭 내가 들어가, 브이를 그리며 인증샷을 찍고, 

그마저도 카메라를 꺼내기가 귀찮아서 넘어가던 내가, 


사진 속에서 나를 빼고, 

내가 보는 풍경을 찍고, 그 단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했던 건, 

일종의 오기였다. 


사회생활 시즌2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였는데, 

유명한 배우를 섭외해서 마치 그 배우가 여행하며 기록하는 것처럼 꾸미는 프로젝트였다. 

내가 속한 우리 팀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 콘텐츠를 채워갔다. 


하지만 채우면 채울수록 내 가슴은 공허해졌다. 

내가 채워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아닌 이 배우가 그 콘텐츠를 채워가고 있다고 생각할 듯 해다. 

물론, 그건 괜찮았다. 

내가 가장 공허하게 느꼈던 건, 내가 채우고 싶은 내용으로 채울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광고주가 원하는 내용으로, 상사가 컨펌하는 내용으로 채워가면 갈수록 공허함이 커져갔다. 


"그냥 나에게 카메라를 한 대 줘요. 내가 이보다 더 재미있고 실감 나는 여행기를 담아올게요."

공허함이 견딜 수 없을 커졌을 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은, 

"네가? 누가 네 여행기를 좋아하겠어?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였다. 


그대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다.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라면 이 대목에서, 

그날로 난 보란 듯이 사표를 던지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라고 적고 싶을 것이다. 


내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사표를 던진 것도 아니고, 

보란 듯이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날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정말, 여행기를 쓸 수 있겠어?

일기 말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여행기 말이야. 


후자는 모르겠지만, 

전자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취미로 찍어대던 카메라를 들고, 중국으로 날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단상을 잊어버리지 않게 취재하듯 기록했다. 

사진은 뭐가 좋은 건지 몰라서, 그리고 어떻게 쓰일지 가늠할 수 없어서 수백 장을 넘어 수천 장을 찍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는 여행의 매력을 느꼈다.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중국 여행에서 돌아와서, 

모아 온 기록들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웠던 파워포인트를 이용했다. 


사진을 놓고, 글을 적었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어설프게 여행 에세이 책 형태로 정리했다. 

그 과정까지도 즐거웠다. 


사회생활 시즌1,2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즐거움이자 만족감이었다. 


여행 작가가 되는 첫걸음이자, 

낯선 설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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