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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n 15. 2021

혼여

낯선 설렘 : 중국

#출국 #하림 #양동근버전도좋아 #혼여 #혼밥 #싱글라이프 #감성현


사실.... 꼰대 같을 수 있겠지만, 

'혼자 여행'의 줄임만로는 '혼여' 보다는 '혼행'이 더 맞겠다. 

旅行(여행)의 여는 '나그네'를 뜻하고, 행은 '다니다'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혼여'보다는 '혼행'이 맞지 않겠냐 싶지만.

나도 혼여라고 쓰는 건, 이미 다수가 쓰는 말이기도 하고, 

한자보다는 한글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혼행 보다는 혼여가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혼자 여행을 자주하는 편이다. 

이유는.... 연인이 없어서다. (ㅋㅋㅋㅋ)


연인은 없어도 친구는 있지만, 

연인만큼 강렬하지 않으니, 

자신의 시간을 억지로라도 맞추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여행을 하면서, 

이제는 여행은 원래 혼자 떠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여행은 혼자지. 

혼여 최고! 




끝나지 않을 것 같었던 프로젝트도 끝이 보였다. 

그동안 미뤄둬야 했던 휴가를 챙겨, 주말까지 붙여 긴 휴가를 냈다. 

꼭, 무얼 하려던 것도 아니었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그냥 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휴가 첫날, 허리가 아파올 때까지 오랫동안 잠을 잤다.

두꺼운 커튼을 친 탓에,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에 일어났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다시 날 침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장이백 감독이 2007년에 만든 ‘상하이의 밤’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상하이에 가고 싶어 졌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상하이가 너무도 달콤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다.


여우비처럼 갑작스러운,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떠나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라고 했던가.

마음은 이미 낯선 거리에서의 설렘으로 한 없이 들뜨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니 문득, 

상하이뿐만 아니라 중국의 다른 곳까지 가보고 싶어 졌다. 

물론, 중국이란 넓은 대륙을 다 가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도시들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상하이, 베이징, 하얼빈, 하이난…. 

그 넓은 대륙에서 내가 알고 있는 도시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커다란 중국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베이징과 상하이를 제외한 다른 도시는 거리상으로 너무 멀어, 이동만 하다 여행이 끝날 것 같았다. 

선택과 함께, 포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베이징에는 중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만리장성’과 ‘천안문’이 있고, 

2008 올림픽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여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다음 이동할 도시는 베이징에서 기차로 1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칭다오였다. 

독일 식민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하니,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한 곳에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고, 상하이는 이번 여행에 불을 붙인 도시인만큼, 빠질 수 없었다. 


상하이까지 갔다면, 물의 도시 저우좡도 놓칠 순 없었다. 

옛 중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상하이에서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왕복 4시간 정도면 가볼 수 있는 거리였다. 


다음 이동할 도시로 선전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그곳에서 KCR을 타고 홍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아닌, 전철을 타고 홍콩엘 가는 것이다. 


나에겐 생각지도 못 한 색다른 경험이었고, 

비용면에서도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보다 

선전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더 저렴했다.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마카오를 놓치고 올 수는 없었다. 


이로써, 

베이징(북경) → 칭다오(청도) → 상하이(상해) → 저우좡 → 선전(심천) → 홍콩 → 마카오로 

이동하는 ‘감성현의 중국 투어’ 코스가 완성됐다. 


차근히 준비할 시간도 없었지만 

떠나기도 전에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하느라 녹초가 되고 싶진 않았다. 

별다른 환전도 없이 현지에 가서 ATM을 이용할 생각에 신용카드 한 장만 지갑에 넣었다.


내 짐은 생각보다 간결했다. 

밤새워 꼼꼼히 선곡한 천여 곡이 들어 있는 MP3 플레이어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한 권. 

그리고 몇 벌 되지도 않는 옷과 평소 사용하던 손 익은 세면도구들이 전부였다.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출국심사를 끝내고 활짝 열린 게이트로 향했다. 

비로소 여행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비행기에 오른 뒤,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내일이면 난 더 이상 여기에 없다. 

그것은 의미 없이 반복되던 어제와 똑같은 오늘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이것이 여행을 떠나게 되는 중독성 강한 이유다.


하늘은 이미 저물어 가고 있었다. 

모두가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 난 떠나고 있었다.


비즈니스로 떠나는 출장이 아닌 이상, 난 로밍을 하지 않는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인 셈인데, 로밍을 하면 완벽한 탈출이 이뤄지지 않는다. 

물론 꼭 필요한 연락이라면 어떻게든 닿아야 하겠지만, 

인터폴에 의뢰할 상황이 아닌 이상, 내게 급히 연락 올 일은 0%에 가깝다.

 

그런 내가 이번 여행에서 그래도 로밍을 한 건, 

아마도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종종 안부를 묻는 문자 정도는 받고 싶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내 안부를 묻는 문자를 확인하게 되면, 

묘한 감동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로밍 후 내가 가장 먼저 받은 문자는 놀랍게도 외교부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위급한 사건사고 발생 시 대사관 또는 영사 콜센터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전산을 통한 자동문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새삼 나를 챙겨주는 우리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마냥 든든했다.


다행히도 위급한 순간은 생기지 않아 외교부로 전화할 일은 없었지만, 

다음에 또다시 문자를 받게 된다면 꼭 한 번 답문자를 보내고 싶다.

 

‘잘 다녀올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일 또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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