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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n 19. 2021

로컬 투어 좋아

낯선 설렘: 중국

#만리장성 #로컬투어 #현지투어 #현지투어서비스 #만나서반가워 #나에게여행이란


투어 신청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투어 신청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유는, 합리적인 가격 때문이다. 

단체로 모아서 투어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이드가 데리고 가는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커미션을 먹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용하기 나름이니까. 

난 현지에서 신청하는 로컬 투어에 대해 긍정적이다. 




베이징에서 만리장성을 간다는 게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욱이 나처럼 중국어 한 마디 못하면서 혼자 여행을 온 사람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책에는 만리장성을 보기 위해선 택시를 하루 빌리든지, 버스를 타라고 했지만, 

택시는 그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고, 

버스는 정류장이 어딘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렇다고 만리장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 하면 에펠탑,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이듯이, 중국 하면 떠오르는 만리장성을 놓칠 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끙끙거리다 

왕빠(중국 PC방)에 가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와이파이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었구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만리장성에 가는 방법 중 내 입맛에 맞는 내용도 없었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계속 카페에 가입을 해야 하거나 블로그 이웃이 되어야 했다. 

그 행위가 슬슬 짜증스러웠지만, 그래도 만리장성엔 꼭 가겠다는 일념 아래 

가장 정보가 많을 것 같은 카페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시 가입 신청을 했다. 

하지만 ‘주인장의 가입 허가를 기다리세요.’라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참았던 인내는 결국 무섭게 폭발하고 말았다. 아! 안 해! 안 해! 

정보 공유에 이렇게 조건을 달아야만, 속이 시원했냐!!


호텔로 돌아와 다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매니저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진지앙이 관광호텔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리장성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우리 호텔의 유일한 한국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만리장성을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리장성이요? 투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아요. 

신청하시면 우리 호텔로 모시러 오고, 투어가 끝나면 다시 모셔다 주죠. 

패키지라서 만리장성만 가진 않고 몇몇 곳을 더 돌게 되는데요, 

코스는 다양하니 가장 마음에 드는 코스를 선택하시면 돼요. 

가격은 160위안 정도예요.”


이것저것 따져봐도 매니저가 추천하는 투어 서비스는 나쁘지 않았다. 

만리장성 외에도 명13릉, 고궁, 천안문 등 웬만한 곳은 모두 투어코스에 들어 있었다. 

교통비와 식비, 입장료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임에도 160위안이라니,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하지만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너무도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중국의 물가가 싸다고는 하지만 160위안이면 뭐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어쩌면 투어버스가 터무니없이 낡아서 종종 내려서 밀어야 하거나, 

제공한다는 식사는 생수와 빵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와 함께 투어 서비스를 함께 신청한 사람들이, 중국답게 1,000명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으,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매니저는 선뜻 투어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빤히 쳐다보며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는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영어가 길어질수록 머리가 아파왔지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좋아요. 하지만 너무 싼 가격이라 이해가 안 돼요.”

“아, 솔직히 이야기하면, 

투어 코스 중엔 중국의 옥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곳도 견학하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그곳에서 기념품을 파는데, 거기서 이익이 생기는 거예요. 

어딜 가나 이런 투어 서비스는 똑같겠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거든요. 

물론 사고 싶은 게 꼭 있다면 사도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쩌겠어요. 

저도 전에 휴일을 이용해서 투어 서비스를 이용했었는데 기념품은 사지 않았어요. 

제겐 그런 기념품보다는 최신 휴대폰이 더 간절했거든요. 

아마 마지막 코스로 발 마사지를 받게 될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것도 무료지요. 

물론, 프로가 해주는 발 마사지는 아니에요. 

공부하는 학생들이 실습 겸 해줘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거죠. 

걱정하거나 기분 나빠하진 말아요. 

냥 싸게 투어를 즐기면 되는 거예요. 

당신은 한국인이잖아요. 

만약 점원이 귀찮게 군다면 중국어를 못한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매니저의 솔직한 설명에 난 입이 떡 하니 벌어지고 말았다.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투어 회사의 상술까지 내게 낱낱이 알려주는 것도 놀라웠고, 

그 설명을 내게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무려 1시간 동안이나 설명해줬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에이, 뭐가 놀라워요? 

저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이보다 더 상세하게 알려주는걸요. 

우린 벌써 친구잖아요. 

그리고 손님 핑계를 대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에서 벗어나 조금은 쉬게 돼요.”

매니저는 나에게 살짝 윙크를 하고는 해맑게 웃는다. 

매니저가 보여준 따뜻한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매니저의 말대로 기념품만 안 산다면 가장 싸고 편하게 만리장성에 갈 수 있겠다 싶었고, 

딱히 다른 방법을 찾을 길도 없어서 투어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른 새벽, 투어 서비스는 시작되었다. 

투어버스에 오르니, 우려와는 달리 나를 포함해서 7명의 투어객이 전부였다. 

다른 투어객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투숙객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다른 호텔에서도 이 투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듯했다. 


함께한 투어객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와 나이대가 비슷했고,  

동양인은 나와 링공유라는 여자뿐이었다.


링공유(중국)는 캐나다에서 유학을 마치고 거기서 만난 제이미(캐나다)와 함께 중국으로 왔다고 했다.

둘은 커플이었는데, 링공유의 말에 의하면 유학 생활에서 만난 제이미가 자신을 하도 쫓아다녀서 

쩔 수 없이 사귀는 거라며 장난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7명의 투어객은 단 한 명도 동일한 국적을 가지지 않은 다국적 팀이었다. 


헤지(이스라엘)는 우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유일한 유부남이었으며 나만한 아들과 딸이 있다고 했다. 

비즈니스로 왔다가 이틀 정도 관광 중이라고 했다. 

일종의 땡땡이인 셈이었다. 

그는 얼마 전 어머니의 생일파티를 집에서 했는데 100명 정도의 손님이 왔었다고 한다. 

집에서 했는데 100명이나 왔다니, 도대체 그의 집은 얼마나 큰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리지(아일랜드)는 나보다 어렸지만 외모는 아저씨에 가까웠다. 

그 역시 비즈니스로 왔다가 이틀 정도 관광 중이라고 했다. 

(이 자식들, 다들 일은 안 하고 어떻게든 짬을 만들어 내는 군. ㅋㅋ)


그는 굉장히 빠른 영어를 구사해서 내가 마리지와 대화를 하려면 몇 번이나 되물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영어를 내게 다시 영어로 통역해주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로리타(미국)는 여자이면서도 유일한 흑인이었다. 

그녀는 음악 웹사이트(www.lolitasweetmusic.com)를 운영하는 CEO라고 했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그녀가 알려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녀는 음반까지 낸 가수였다. 


마지막으로 모하메드(이란)는 두바이에 있는 관광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매가 무섭기도 했는데, 

만리장성 꼭대기에 버려진 쓰레기를 끝까지 챙겨 내려올 정도로 매우 착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신앙 때문인지 술이랑 담배는 절대 입에도 대지 않을 만큼 자신에 대한 관리가 철저했다. 

나와 동갑이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친해졌는데, 

그가 그날 저녁 두바이로 돌아가는 일정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하루 정도 더 함께 베이징 시내를 거닐며 좋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세계 곳곳의 다양한 친구들이 생겼다. 

처음엔 서로 서먹해서 말도 잘 안 했지만, 

링공유와 제이미를 제외하면 모두가 혼자 온 여행이기에 

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시작으로, 

인종과 언어를 뛰어넘어 자연스레 친해지고 있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을 끊임없이 만난다는 것이다. 

비록 긴 시간을 함께하진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마음을 열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물론, 혼자서 조용히 여행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낯선 사람의 살가운 친절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조용히 여행하길 원하는지, 

수줍어서 말을 못 하는 건지는 결국, 서로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 있어서 머뭇거리는 편이 아니다. 

언제나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적어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지 않을 이유는 없는 셈이다.




투어 서비스는 이동도 편했고,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고, 

어딜 가도 이미 모든 돈을 지불한 후라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정말 마음이 편했다. 


매니저의 말대로 몇 곳에서는 기념품을 사라고 강요당하기도 했지만, 

짓궂게 보일지 몰라도 장사꾼과 은근히 신경전을 벌이며 끝내 아무것도 사지 않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이런 식의 투어 서비스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해놓은 장소들, 정해놓은 시간들. 

편하긴 했지만 내 시간을 도둑맞고 있다는 기분을 끝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여행이란 손가락으로 ‘V’를 만들고는 어디에 갔다 왔는지 증거 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내가 가고 싶은 곳엘 가서, 

내가 느끼고 싶은 감성을 느끼는 게 진정한 나만의 여행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도쿄로 보름 정도 그곳의 유명한 곳을 자세히 안내해주는 책을 한 권 사들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책에 나와 있는 곳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마치 증거 사진이라도 남기듯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진들을 자랑스레 보여주며 

이 많은 곳을 다 가봤다고 우쭐해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가슴속에서 도쿄란 곳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난 도쿄를 사진으론 담아왔지만, 가슴에 담아오진 못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과 함께 달렸다면 어땠을까?

도쿄 골목골목을 누비며, 눈에 들어오는 길거리 음식을 맛봤다면 어땠을까?

늦은 오후, 거리 공연을 하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함께 선술집에서 사케 한 잔을 마셨다면 어땠을까?


도쿄타워에 올라가진 못했어도, 

신주쿠의 높은 빌딩 숲 사이를 거닐진 못했어도, 

오다이바의 레인보우 브릿지를 만나진 못했어도, 

나까미세에서 기념품을 사진 못했어도, 


그랬다면, 

도쿄는 나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중국, 베이징 / 만리장성 일부를 올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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