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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n 22. 2021

사진도 좋지만 죽고 싶진 않아

낯선 설렘: 중국

#청도 #칭다오




바닷물이 슬그머니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주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방파제 같은 곳으로 내려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낯선 이방인의 야릇한 포즈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어느새 주위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내 포즈를 따라 하기도 했다. 

몇몇은 나에게 다가와 포즈를 어떻게 취하는지 자세히 묻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이렇게 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기뻤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순식간에 발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후였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조수간만의 차가 이렇게 빠른지 그날 처음 알았다.

슬슬 돌아가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력 질주로 돌아가야 겨우 물에 빠지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물은 순식간에 발아래까지 닿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까지 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던 현지 사람들은 이미 모두가 사라지고 없었다. 

보아하니 그들은 이곳이 물에 완전히 잠기는 곳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깐이지만 함께 웃으며 어울렸던 사인데, 

아무런 얘기도 없이 자기들끼리만 빠져나간 그들이 못내 섭섭했다.

 

아무튼. 

가만히 물에 빠져 죽을 순 없었다.


카메라를 한 손에 꽉 움켜쥐고 

이미 많은 부분이 바닷물에 잠겨 좁아진 바닥을 조심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까지 나갔던 탓인지 결국 내 신발은 짜디짠 바닷물에 푹 잠기고 말았다.

게다가, 너무 서두른 나머지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었고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몸을 지탱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더 큰 본능이 깨었다.

카.메.라!!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번뜩하니 떠올랐고, 

난 재빨리 손목을 안으로 꺾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호했다. 

다행히, 손목이 꺾이는 대형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조개껍질에 손등을 다쳤다. 


피다. 

철철 흐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피는 피다. ㅜ..ㅜ


아, 여행하면서 까불면.

정말 개손해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신발을 바람에 말리며 해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이렇게 여유로웠던 적이 있나 싶다.


마지막 일 분까지 최대한 이불 속에서 버티다가 마지못해 일어나던 날들.

늘 무언가에 쫓기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일했던 날들.

며칠씩 집에도 못 가고 회사에서 밤을 세웠던 날들.


쫓기듯 살아가고, 

쫓기듯 잠이 든다.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르고 있는데, 

그동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았던 걸까?


바닷물에 흠뻑 젖은 신발이 다 마를 때까지 해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참을 멍하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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