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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n 21. 2021

낡은 카메라

낯선 설렘: 중국

#카메라 #사진기 


지금이야 '스마트폰=카메라'지만, 

여행을 시작하던 초반, 그 당시에는,

여행에 있어서 카메라는 따로 챙겨야 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건 하나의 큰 짐이기도 해서, 장기 배낭여행자인 나에게 카메라는 애물단지였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카메라. 


지금도 내 창고 박스에는 

낡은 카메라가 여러 개 담겨있다. 

몇 개는 운 좋게도 중고로 팔았지만, 

몇 개는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놓쳐서, 

너무 헐값이 되어 팔지 못하고 그냥 가지고 있게 되었다. 

수년이 지나도 한 번도 전원을 켜보지 않은, 그래서 '낡은' 카메라가 된 카메라.


오늘은 먼지 쌓인 창고 박스에서 꺼내 사진을 몇 장 찍.... 기 귀찮다. 솔직히. 




낡은 카메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왠지 끌리는 물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서서 즐거운 상상을 한다. 

이번엔 낡은 카메라가 대상이었다.


카메라의 원래 주인은 ‘진쯔쉬안’이라는 매우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밥을 먹을 때 무얼 먹을까 결정을 못해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외출에 있어서도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해, 

한참을 대문 앞에서만 서성이다 해가 저물기 일쑤였다.


어느 날 진쯔쉬안은 낡은 다락방을 정리하다 카메라를 발견한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진쯔쉬안은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게 되는데, 

사진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몇 번을 다시 찍어도 마찬가지였다.


진쯔쉬안은 왜 자꾸만 그녀의 모습만 찍히는지를 고민했다. 

매일 그 생각만 하던 진쯔쉬안은 점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진쯔쉬안은 그녀를 찾아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진쯔쉬안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진쯔쉬안은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이 찍히는 카메라를 잊어버렸다. 


결국, 집 앞을 지나가는 고물상 주인에게 카메라를 팔아버렸다. 

사실, 카메라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찍어주는 마법의 카메라였다. 


그리고 그 '카메라'는 지금 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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