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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07. 2021

난감하네, 화장실

낯선 설렘: 필리핀

#필리핀 #마닐라 #화장실 #변기 #변기커버 #변기뚜껑




견디기 힘든 무더위도, 

온몸에 강렬한 흡혈 자국을 남기는 모기까지도, 

필리핀의 모든 것을 이젠 사랑하고 있었다. 

특히, 축축해서 싫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난 맑던 하늘에 갑자기 내리는 장대비, 스콜을 사랑했다. 


모든 게 좋았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는 필리핀의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날 힘들게 했던 단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화장실이었다.


물론, 하숙집 화장실은 괜찮다. 

가끔 누군가가 물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하숙집을 벗어난 후에 있었다. 


조그만 상점 같은 곳이야 그러려니 이해할 수도 있지만 

꽤 근사해 보이는 식당의 화장실까지 정말이지 이렇게 더러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그래, 화장실이란 게 원래 더러운 곳이니 그것마저도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기의 중간 커버가 없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훔쳐갈까 봐 그래.”

나중에 들은 얘기다. 

뭐라고? 훔쳐갈 게 없어서 변기 커버를 훔쳐간다니…


“좋아, 남자는 그렇다고 쳐. 여자는? 여자 화장실도 그래?”

설마 여자 화장실까지 그럴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 가능해?”

정말 궁금했다. 

좌변기에서 중간 커버가 없으면 그 구멍은 거대하다. 

웬만큼 뚱뚱한 엉덩이도 그대로 빠질 텐데, 어떻게 볼일을 볼지 원초적 궁금증에 미칠 것 같았다.

 

“기마자세.”

아! 기마자세.


군대에서 기합을 받을 때나 하던, 

그 힘겨운 기마자세로 엉덩이를 살짝 떼고는 볼일을 본다는 거다. 

아, 이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차라리 와변기를 설치하면 불편한 일은 없을 텐데, 

아무래도 와변기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외출할 때면 뱃속 상태는 나쁘지 않은지를 꼭 살폈다. 

혹시라도 밖에 있을 때 신호가 온다면,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최악의 기합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마자세로.... 가능해?

푸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냥 그 위로 올라가서 해결해. 밟고 올라간다고.

이런.... 당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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