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현 Jul 17. 2021

외국에서 하숙집을 운영한다는 것은

낯선 설렘: 필리핀

#동남아 #아세안 #필리핀 #마닐라 #인터뷰 #안젤라 #하숙집 #하숙집운영





많은 사람을 만나는 만큼, 더 많이 배우게 돼요.


피플 인 마닐라: 인터뷰#1


마닐라에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젤라는, 

한국인에겐 ‘하숙집 아줌마’로 통하지만, 

현지인에게는 ‘보스(Boss)’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로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강한 ‘포스’를 발산하던 그녀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두 딸의 엄마이자 평범한 아내일 뿐인데, 

인터뷰를 하는 것이 마냥 쑥스럽다는 모습이 내겐 왠지 어색했다. 

하지만, 막상 녹음기를 켜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진지한 눈빛을 발산하는데, 

역시, 첫 느낌 그대로였다. 


난,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을 싫어한다.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 

실패해도 웃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 

내면에 열정이 가득해서 얼핏 보아도 그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이 좋다. 


그리고, 안젤라는 그런 사람이라 느꼈다. 


GHam

안젤라는 어떤 사람이에요?


궁금했다. 

하지만, 다짜고짜 ‘어떤 사람이에요?’라니. 

참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지나온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듯한 안젤라는 

특유의 밝은 미소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Angela 

제가 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거든요. ^^ 

아이들도 일찍 낳다 보니, 아이들 키우느라 잠시 접어 두었던 꿈이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제가 아직도 젊은 나이잖아요. 

아이들만 키우고 살기도 그렇고. ^^ 

이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중국에서 유학생활도 했었고요. 

그래서, 언젠간 외국에서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죠. 


물론,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라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 끝도 없다며 울상을 지었지만, 

맹목적으로 희생만 하는 우리의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신세대 주부다운 모습이었다.


Angela 

아이들은 평소에 얘기를 많이 나눠야 해요. 

한국에 있을 땐, 이 부분이 늘 부족했거든요. 

아무래도 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힘드니깐요. 

그러다 보니, 하루가 정말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죠. 

남편과 저는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죠. 

한국에 살기 싫다는 얘긴 아니에요. 

한국은 살기에 너무 좋아요. 

돈만 있으면요. (웃음)

 

돈만 있으면.

그래, 돈만 있으면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다. 

하지만 난 왜, 이렇게 축복받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서민들은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걸까? 


Angela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을 키웠는데, 

아이들이 좋은 대학 간다는 보장도 없고, 

좋은 대학 갔다고 해도 좋은 직장 다닌다는 보장도 또 없고, 

좋은 직장 들어가도 언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이 모든 걸 생각해 보면 진짜, 갑갑하더라고요. 

그래서 마닐라로 온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마닐라에 오고 나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무엇보다) 가사에서 벗어나니, 마음의 여유도 다시 생겼거든요. 

아이들에게 늘 물어봐요. 

‘엄마는 마닐라에 와서 좋은데, 너희도 좋지?’라고. 

저는 좋은데 아이들이 좋지 않다면 마닐라에 있을 이유는 없죠. 

다행히 아이들도 좋아해서 만족해요. 


GHam

아이들에게 마닐라가 좋은가요?


Angela 

적어도 교육적인 부분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깐요. 

교육이란 게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이곳 학교에서의 교육도 만족해요. 

사실, 한국의 교육은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고, 목적도 단순하잖아요. 

좋은 대학! 알죠.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 다닐 수 있고, 

좋은 직장 다녀야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이런 뻔한 이야기, 누구나 다 알죠. 

하지만 전국에 학생수가 몇인데요? 

좋은 대학은 몇 개뿐이잖아요. 

그런데도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비전이라고 제시하는 건 ‘좋은 대학’뿐이에요. 

결국 좋은 대학을 못 간 학생들은요? 

이후에 누가 책임 지나요? 

좋은 대학 나와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한국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주입식 교육. 

그래, 난 어려서부터 유난히 외우는 것을 싫어했다. 

외우더라도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수학 공식을 하나 외우더라도 수 백 번 문제를 풀어서 흡수해야만 했다. 

영어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장에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써 내려가며,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리는 걸 싫어했다. 

그렇게 해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차라리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그 단어를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었다. 

그걸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하면, 언제나 부작용이 생긴다.  


하지만, 문제는 늘 부족한 시간이었다. 

누가, 억지로 외우려 하는 걸 좋아하겠는가. 

자연스럽게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습득하는 게 좋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무조건 외우라고 강요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어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업 방식이었다. 

이해한다고 해도 따라가고 싶지 않은 길이기도 했다. 


참 좋은 선생님도 많았다. 

수학 공식 하나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우치게 하셨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자신이 살아갈 모습을 꿈꾸길 바라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참 좋은 선생님들은 언제나 무능력하다고 불명예를 달기 일수였다. 

물론, 그 평가는 대학에 몇 명의 학생을 보냈는가에 맞춰진 어이없는 기준 때문이었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고, 

사진 찍길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던 나에게, 

어른들은 항상 정해놓은 길을 제시하며,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된 나는 그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다. 

적어도 당신들이 이야기 해준 그 길은 절대 나를 위한 길이 아니었다고. 

나는 그 길을 따라가는 수많은 학생들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고, 

그 길의 끝에 도착하는 학생수를 기록하는 숫자에 불과했다.


Angela 

한국은 어느 면에서 본다면, 출석만 성실히 하면, 졸업은 시켜주잖아요. 

근데, 여기는 초등학교부터 자신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졸업을 시켜주지 않아요. 

낙제를 하는 거죠. 

물론, 피 터지게 공부만 해야 따라갈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에요. 

뭐랄까? 공부란 게 누가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신해서도 안 되는. 

결국엔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요? 

어려서부터 올바른 공부 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전 그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어요. 


문득, 교육에 있어서는 선진국도 많을 텐데, 마닐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Angela 

마닐라에 친척 분이 살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친척 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깐, 

초기 위험 부담도 적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죠. 

하숙집도 친척 분의 소개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 친척 분은 여기서 자녀들도 다 대학에 보내고, 

스스로도 치대에 다니고 계셨거든요. 

오랜만에 인사도 드리고, 마닐라의 학교는 어떤가 궁금하기도 해서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게 된다는 점 말고도, 그 아이의 재능을 키워 주는 교육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한국의 교육환경은 뭐랄까.... 좀 싫었거든요. 

달달 외우는 것도 그렇고, 등수로 내 아이가 평가받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고민 끝에 마닐라로 오게 됐죠. 


GHam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Angela 

우선, 마닐라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하숙집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돼요. 

집을 보수해야 하면, 사람 써서 직접 고쳤고. 

핼퍼를 고용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고, 

매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는 것도, 

하다못해 전기요금, 수도요금을 내는 것도 다 제가 직접 하다 보니, 금세 적응하게 되죠.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하숙집을 운영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 하숙집 운영은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부담을 덜어줘요. 

물론, 하숙집을 운영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저, 우리 식구 여기 있는 동안, 가계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이죠. 

그리고 솔직히 하숙집을 운영한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니거든요. 

초반엔 오히려 적자였어요. 

어떤 집을 구해서 시작하냐에 따라 틀리지만, 

대략 월세로 5만 페소가 나가고, 

거기에 전기요금, 수도요금, 아, 그리고 음식값도 무시 못하죠.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면 한 달에 적어도 10만 페소는 술술 나가거든요. 

지금도 남는 건 없어요. 

남는다고 해도, 나를 믿고 우리 하숙집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투자하죠. 

제가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특히, 하숙집을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그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배우는 것도 참 많아요. 


안젤라는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왜 힘든 일이 없겠는가? 

그것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터지고, 

언어와 문화 차이로 그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안젤라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적성에 맞아 보인다고 할까? 


Angela 

맞아요. 

하숙집은 적성이 맞아야 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걸요? 

왜냐하면 전혀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사는 거잖아요. 

매일같이 사람과 부닥쳐야 하는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단 하루도 못 견딜걸요. 

저게 아는 분들 중에서도 하숙집을 운영하시다 끝내 병만 생겨서 한국으로 돌아가신 분도 여럿 있어요.


GHam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Angela 

지금은 하숙집을 운영해야 하고, 아이들도 잘 돌봐야 해서 좀 더디긴 하지만, 

저 역시 꾸준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계속해서 하숙집을 운영할 생각은 없어요. 

스스로 어느 정도 영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들면, 더 넓은 나라로 나가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해주고 싶고요. 

지금은 저도, 아이들도 테스트를 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전 끊임없이 도전할 생각이에요.


끝없는 도전. 누구나 갖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그래서 알고는 있지만, 가슴에 쉽게 담지 못하는 끝없는 도전을. 

안젤라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그녀의 말처럼, 

나 역시, 안젤라와의 만남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FIN




         

매거진의 이전글 바닐라향 마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