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현 Jul 29. 2021

만나서, 고마워요

낯선 설렘: 일본

#일본 #도쿄 #동경 #서울동경






만나서, 고마워요

女_과거: 서울, 시청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의 SNS.

그 안에 빽빽하게 담긴 서울의 풍경을 훔쳐보다가, 

어느새 그 사진 뒤에 있을 너에게 흠뻑 빠져들고 말았어.


여우를 닮은 학교 여자 후배와 함께 갔다는 곳을 보면서는,

왜인지 모를 질투에 한쪽 입술이 삐쭉 올라갔고,


혼자 묵묵히 걸었다는 곳은 

함께 걸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들었어.

 

솔직히, 

이게 무슨 감정인가 싶기도 했었지만, 

뭐 어때, 

사랑은 사춘기 소녀만이 하는 설렘이 아니니까. 


사랑? 

설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단어가 떠오른 순간,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정말로 사랑에 빠져든 거야.


무작정 짐을 싸고, 

동경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믿기지가 않아 헛웃음만 나왔지.

 

그래, 

꼭 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야.


단지, 

너의 SNS를 따라 보물 찾기라도 하듯, 

여행 놀이를 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그래도, 

우연이라도 너를 만나게 된다면, 

그리고 운명처럼 한눈에 너를 알아보다면. 


이 말 정도는 해주고 싶어. 


만나서, 고마워요. 

라고.






사랑 뒤집기

男_현재: 동경, 토초마에



하루치 감기약을 몽땅 먹었다. 

당신은 괜찮다고 했지만 감기에 걸린 이상,

 

당신과의 입맞춤을 피해야 했고, 

그래야 한다는 사실은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낫고 싶은 마음에 

하루치 감기약을 한꺼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을 뿐인데, 

정말 그래서였는데,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듯한 멍함 속에서 

결국 더 많은 날들을 괴로워하며 

침대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신음해야 했다.


내가 생각해도 멍청했다. 

그 우둔함에 몸은 더욱 엉망이 되어갔지만, 

웃음은 터져 나왔다. 


처음엔 겁먹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당신도, 

날 따라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탈진을 거듭하며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내 입술에 

깊은 숨결을 밀어 넣어주고 사랑한다 속삭였다. 


이것은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당신의 숨결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강한 독성을 지녔다. 

곧바로 침대는 지중해의 깊은 바다가 되어 한없이 날 아래로 끌어당겼고 

곧이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젤리 속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가는 먹먹함이 감돌았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달콤한 꿈을 꾼 듯, 

그 꿈에서 깨었을 땐 당신은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에 당황하고 있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명분이 필요하다. 

초라하지 않은 그럴듯한 명분. 


묻고 싶다. 

아니, 알고 싶다. 

그래, 이해하고 싶다. 


사랑이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뒤집어 버린 당신을,

난 어떻게든 믿을 수 없으니까.


당신을 만날 생각은 없다. 


만나지 않아도, 

그래서 묻지 않아도. 

이 여행의 끝나면, 

당신을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그런 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동경: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