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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29. 2021

기록에서 기억을 훔치다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기록에서 기억을 훔치다

女_과거: 서울, 시청



사진을 찍는다는 건,

누군가의 삶에서 짧은 한 순간을 훔쳐오는 거야.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면서

男_현재: 동경, 토초마에



어딘가 어색한 말투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가, 아, 잠깐. 

고향을 맞추겠다며 애썼다. 


끝내 맞추지 못한 나의 당혹함 앞에,

동경에서 자랐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맞추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며 웃었다. 


동경에 살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올라 가봤다던 동경타워. 

명절에 찾아온 친척들이 아니었다면 가보지 않았다던 아사쿠사. 

하나도 신기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시부야. 


그렇게 가끔씩 

당신은 날 만나는 동안 

당신이 자랐다는 동경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엔 늘,

당신만의 마법의 장소를 이야기했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 있어. 

그곳에 가면 거짓말처럼 말끔히 치유되거든. 

멍하니 앉아서 한나절이나 보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런데도, 정말 딱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그러면 거짓말처럼 모든 게 치유되는 거야. 

마치 마법처럼.”


마법.

마법의 장소.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은 웃기만 할 뿐 어디인지는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전혀 특별한 곳이 아니야. 

내가 그곳을 특별하게 여기는 순간, 

나에게 마법과 같은 곳이 된 거지.

 

이해하면서도 서운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늘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만 만지작거렸다. 


그런 내게

당신은 살며시 다가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젠, 그 마법의 장소에 갈 일은 없어.

이젠, 네가 그 마법의 장소니까.” 


그 말을 믿었다. 

나와 함께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아픔은 없다고.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바라본 동경에서 볼 수 없는

男_현재: 동경, 토초마에



서울이란 도시에 살면서 병풍처럼 봐왔던 산인데,

동경에선 아무리 둘러봐도 볼 수 없다. 


도시와 산은 어울리지도 않는데, 

산이 없는 도시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산이 동경에 와서야 비로소 보인다.

 

당신을 떠나고 나서야 

당신을 볼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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