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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낯선설렘
내 편이 되어줘
낯선 설렘: 일본
by
감성현
Aug 4. 2021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배두나 #공기인형
내 편이 되어줘
女_과거: 서울, 명동
내가
멍청한 소릴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맞장구 쳐주면 좋겠어.
작은 실수에 감당하기 힘든 비난을 받고 있다면
함께 화를 내주면 좋겠어.
핀잔을 들어 한 움큼 입이 나오더라도
내 철없음을 확인시켜주기보단 달콤한 입맞춤을 해주면 좋겠어.
지금의 삶이 두려워 잔뜩 움츠리고 있다면
충분히 쉴 수 있는 가슴을 내밀어 주면 좋겠어.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면 좋겠어.
그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여행의 첫걸음은 돌아오기 위한 첫걸음이다
男_현재: 동경, 신주쿠
당신의 떠남은 이별이 아닌 여행이라 믿었다.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을 막을 순 없다.
병이 나고 마니까.
여행을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불치병.
그래서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단지, 당신의 그 여행이 제발 길지 않기만을 바랬다.
여행의 첫걸음은 돌아오기 위한 첫걸음이니까.
결국 돌아오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여행은,
나였다.
당신의 마지막
男_현재: 동경, 신주쿠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우리의 마지막.
딸랑거리는 카페 문에 걸어둔 작은 종을 울리며 당신은 들어왔다.
날 발견한 당신은 말없이 다가와 앉았고,
그 후로도 마른침 삼키는 소리까지 메아리쳐 귓가에 울리던 참으로 긴 침묵이 흘렀다.
“미안.”
한참 만에 당신에게서 흘러나온 단 한마디.
그리고 곧, 또다시 당신은 침묵했다.
나지막이 카페 안에 흐르는
언젠가 들어봤던 노래만이
당신과 나 사이에도 소리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솔직히...”
당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답답하던 고요함이 한순간 흐트러지면서,
차라리 그 침묵의 시간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피했었어.
사랑이란 거.
단지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에서 하나 더 갖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하나를 위해 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더라.
사랑이라 믿었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참 잔인하다고,
괜찮아 할 수 있더라.”
언제부터 외워온 대사일까?
저러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장난인데 놀랬지?’하며 웃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의지와 상관없이 감기는 눈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깊은 절망에 입술이 떨렸다.
“잘 지내, 안녕.”
정말, 잘 지내길 바라는 건지.
정말, 아무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는 건지.
아니,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끝끝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일어나버린
당신의 차가운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나친 악몽이라면,
어서 깨어나고 싶었다.
딸랑!
카페 문에 걸어둔 작은 종이 짧게,
울었다.
그 소리에 번뜩 정신이 돌아오고,
멈춰있던 눈이 서둘러 당신의 흔적을 좇았다.
서서히 닫혀가는 문 뒤로 고개 숙인 당신이 보였다.
끝.
그럴 순 없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서둘러 달려가 아직은 멀리 가지 못한 당신의 손목을 붙잡았다.
뿌리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잔뜩 힘을 줬는데,
다행히도 순순히 걸음을 멈췄다.
“그냥, 보내 주면 안 될까?”
하지만, 흘러내린 당신의 눈물을 보지 말았어야 했었다.
울음을 참느라 들썩이던 어깨를 보지 말았어야 했었다.
아파하고 있었다.
나 못지않게 당신도 아파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픈데도 당신은 나를 떠나려 했었다.
천천히.
미련이 남은 듯,
힘겹게 내 손 안에서 당신의 손이 빠져나갔다.
기억이.
추억이.
사랑이.
당신이 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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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다 아세안> 출간작가
소설, 에세이, 노랫말을 쓰는 작가, 감성현입니다. 썼다 고쳤다 지웠다를 반복해서 연재는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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