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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Aug 04. 2021

신주쿠의 밤

낯선 설렘: 일본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혼자임을 느낄 때

女_과거: 서울, 명동



또 토라졌지. 

일로 만난 사람이기에 웃어주고, 맞장구 쳐줬을 뿐인데.

너에겐 왜 그런 모습 보여주지 않느냐며 또 화를 냈지.


일을 그만두라는 말도,

먹여 살리겠다는 말도 고맙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니?


답답함을 넘어선 서운함이 밀려와.


어리다고 이해하기엔 내 머리가 너무 아프고

행동이 어릴 뿐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내가 이젠 지쳐가나 봐.


내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 건 너뿐인데.

그런 나에게 자꾸만 왜, 

가식이라는 가면을 씌우려고만 하니.






신주쿠의 밤

男_현재: 동경, 신주쿠



도시. 

뛰고 있는 심장 소리만큼 바쁘게 돌아가지만 나에겐 평온을 준다. 

누구를 붙잡으러 가는 건지, 

누구를 살리러 가는 건지 구분할 수 없는 저 멀리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자장가가 되고, 

군가를 향한 듣기 거북한 욕설도 클래식만큼이나 편안하다.

 

맥주.

어둠이 내린 회색빛 도시 구석에서 습관처럼 맥주를 찾는다. 

주를 사랑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대 보지만, 

미칠 듯이 외로울 뿐이다.

 

여자.

눈이 풀린 여자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날 보는 건지, 

다른 곳을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다 곧, 졸음이 쏟아지는지 반쯤 떨어질 것 같은 속눈썹을 깊이 감고 뜨며 말을 붙인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자존심이 상했는지, 흥미를 잃었는지 

비틀거리며 자리를 뜬다.


담배.

심장을 움켜쥐고 터뜨릴 것 같은 재즈가 흘러나오자,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담배를 꺼내 문다. 

깊이 삼키고 쏟아져 나오는 연기를 깊게 참으면 내 몸속 어딘가에서 소멸되고, 

내 앞에 놓인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삼킨다. 





내려놓은 껍데기

男_현재: 동경, 신주쿠



뒷골목.

또각대는 내 발자국 소리가 묵묵히 날 따라온다. 

조심스럽게,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은 듯, 

나와 똑같은 템포로 잠깐의 사이를 두고 뒤따라온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어느덧 날 집어삼킨다.


바람. 

차가운 바람이 일순간 내 뺨을 때리고 도망친다. 

이어서 가슴속 견디기 힘든 공허함이 밀려온다. 


담배를 또 피울 생각은 없었지만 라이터는 켜고 싶다. 

그 작은 온기마저도 그립다, 난.

 

이대로 

삶이, 

시간이, 

숨이 멈춰도 좋을 것 같은데 

내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술 취한 밤은 

동경에서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난 사랑을 붙잡지 않고서 아픈 척하는 이기적인 남자다.


벗어던지고 가버린 빈 껍데기가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의 전부다. 

가식으로 가득 얼룩진 그 가면은 여전히 웃는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부숴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주저앉고 만다. 


가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당신의 본모습이다.

 

여전히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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