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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Sep 17. 2021

가이드북을 버립니다

낯선 설렘: 일본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팔린 여행 가이드북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 아니라 페이퍼인 이상, 

급변하는 현지 사정이 빠르게 업데이트되지는 않는다. 


소개되어 있는 숙소가 없어진 경우도 있고,

그 숙소의 비용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교통편 시간표가 다른 경우도 있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 마치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편견을 갖게도 한다. 


몇 번의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난 가이드북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가이드 북부터 샀는데,

이제는 인터넷 검색을 더 믿는다. 


가장 신뢰하는 건, 

현지에서 직접 발로 뛰면서 묻고 알아보는 거다. 

그래, 남이 아니라 내가 직접 알아보는 정보.

틀려도, 혹은 더 나은 정보를 놓치는 경우에도, 

적어도 남 탓은 안 하게 된다. 


 도쿄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온 가이드북엔,

분명, 시부야에서 시모키타자와까지 한 정거장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한 정거장 정도는 충분히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슬슬 걷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시모키타자와가 나올 생각을 안 하더라.

하도 이상해서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방향은 맞다고 하면서도 매번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다고 했다.


역과 역 사이가 멀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결국, 걷다 걷다 지쳐서 전철을 타고 보니 웬걸! 무려 네 정거장이나 되는 게 아닌가.


가이드북이라면, 올바른 정보를 주던가,

비인기 역을 스킵할 생각이라면 "모든 역을 표기하지 않았음"이란 경고문이라도 넣어주던가.


자기 편한 대로 쓴 가이드북 때문에, 

결국 내 얼굴을 뜨거운 도쿄 한낮의 태양 아래, 홀라당 타고 말았다. 


인상을 쓸 때마다 피부가 땅기고 따갑다. 

젠장.


게다가 가이드북은 최대한 많은 곳의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 많은 정보를 담으면서, 뉘앙스가 다 가 볼만한 곳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가 볼만하다'는 그래도 객관적이라 넘어갈만하다. 

'꼭 가봐야 할 곳'의 뉘앙스일 때는 무척이나 주관적인데도, 꼭 가봐야 할 것 같다. 


도쿄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장소들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 

따지고 보면 괜히 왔다 싶은 곳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곳까지 굳이 책에 넣어야 했을까 싶은 곳이다. 

그냥 작가의 개인 SNS 정도에 올리면 될만한 곳이다. 


물론, 개인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겐 참 좋은 정보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는 건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히려 솔직하게, "그냥 그런데, 시간 남으면 가보던지."라고 기록해 놓았으면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곳들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끼는 여행자도 많으니까. 


유명하지 않지만, 

너무도 소소하지만,

그럼에도 울림을 주는 장소. 

그런 곳을 소개해주는 가이드북.

그런 가이드북이 세상에 한 권 정도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미 나와 있을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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