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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08. 2021

간판 놀이

낯선 설렘: 중국

#중국 #상해 #상하이 #간판


그런 건 뭐하러 찍어?

내가 간판을 찍고 있으면 동행한 지인이 묻는다. 


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들꽃을 찍는 것과 비슷한 이유랄까?

내 눈에는 예뻐 보여서다. 


카톡에 꽃 사진을 보내면 아재 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내가 찍은 간판 사진은 남들과는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취미이기도 하다. 




나에겐 ‘간판 놀이’라는 게 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건, 내 이름과 똑같은 동네 가게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마냥 신기해서 일단 찍어 뒀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게 되니 그 또한 추억이 되더라. 


그 후, 어딜 가든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됐는데, 의외로 재밌는 간판이 많다.


그날 내가 발견한 재밌는 간판은 ‘VISAGE’라는 카페의 간판이었다. 

얼굴, 용모란 뜻의 그 단어가 왜 갑자기 ‘비싸지’로 읽혔던 걸까? 

주변에 다른 예쁜 카페들도 많아서, 

우리 집이 더 저렴하다고 말해도 손님이 올까 말까일 텐데, 

버젓이 비싸다고 외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뭔가 다른 카페에선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비장의 무기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때까지도 내가 잘 못 읽은 줄 몰랐다. 게다가 한국어가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대표적인 메뉴는 초콜릿 퐁듀였다. 

가격은 그 당시 하루 숙박비와 맞먹는 가격이었다. 


잘못 읽었지만, 간판대로 가격은 ‘비싸지’였다.


평소 초콜릿은 입에도 대지 않기에 별 미련 없이 나가려 했는데, 

지배인이 다정히 웃으며 다가와 ‘왜 그냥 가시나요?’라고 묻는다. 

마땅히 둘러댈 말도 없어서 솔직히 호기심에 구경하려고 들어온 거라 했다. 

그 말에 친절함이 몸에 밴 지배인의 필요 이상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은 백악관 요리사였던 사람이 운영하는 곳으로 태국, 방콕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왠지 오랫동안 붙잡혀 지루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 고통이 밀려올 것 같아 

가벼운 인사를 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간판에 있는 얼굴이 ‘약 오르지’ 하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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