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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09. 2021

낯선 설렘: 중국

#중국 #저우좡




벽은 많이 늙어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비를 막았고, 바람을 막았고, 햇볕을 막았던 벽은 이젠 제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벽은 자신의 생이 다했다는 것을 도통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벽은 부서지고 있었다. 

온통 잔금이 가득했고, 빛바랜 색은 우울했다. 

떨어져 나간 흙더미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이고 버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벽은 애써 모든 것을 모른 척 외면하고 있었다.


어느 날 벽은 자신 앞에 쌓이는 새 벽돌을 본다. 

사람들은 새로운 벽을 세우기 위해 천천히 시멘트를 물에 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벽은 자신의 마지막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난 여기서 몇 백 년을 살아왔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어. 

그동안 이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지켜왔는데, 

그들이 나를 버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벽은 이제 사라지고 

그곳엔 튼튼한 새 벽이 새로 세워진다. 


벽은 모르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모든 걸 체념한 벽은 이제 

작은 먼지가 되어 저 넓은 세상을 떠돌아다닐 것이다.

몇 백 년을 한자리에 머물던 벽에게 새로운 삶이 날아와 안겼다. 


자신을 무너뜨린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원망을 안고 떠돌던,

새로운 곳에 대한 낯선 설렘을 안고 떠돌던,

그것은 벽이 새로운 삶을 걸로 결정할 일이다. 


어떻게 살던, 

그것은 이제 벽의 결정이다.

벽은 이제 자유롭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작은 도시에서 우연히 

바람에 날아온 벽을 다시 만나면,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묻고 싶다. 


행복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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