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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10. 2021

안녕, 낯선 사람: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낯선 설렘: 중국

#중국 #홍콩


지금 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에게 홍콩은 적어도 나와 청춘을 함께 했었다.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 

나의 중국 여행은 결국 홍콩을 가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혹시나, 주윤발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도시에 어둠이 내리면 하나둘씩 불이 켜진다. 

그렇게 모인 불빛들은 서서히 사람의 감정을 흔들기 시작하지. 

어쩌면 에디슨이 발명한 건 ‘전구’가 아니라 ‘감성’이 아닐까? 


한껏 페로몬에 취해 셔터를 눌러대던 나에게 어느새 다가온 여자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은 카메라를 내밀며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어. 

밤이라 그런지 자꾸만 흔들려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서 말이야. 

불행히도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 더는 기회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어.


보아하니, 삼각대는 없어 보였어. 

삼각대 하나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말이야.

난 여자의 작은 카메라를 반듯한 난간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최대한 흔들림 없이 셔터를 눌렀어. 

너무도 선명하게 찍힌 사진을 보면서 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어.

“당신 마술사예요?”

"타이머 기능되죠? 그럼 더 선명하게 찍힐 거예요."

"고마워요."

여자는 그동안 흔들렸던 사진들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난간 위에 작은 카메라를 고정시키곤 한참 동안 사진을 찍어댔어. 


근처에서 사진을 찍던 여자는 다시 내게 다가왔어. 

답례를 하고 싶다고 했어.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말이야. 


길거리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끼리의 통과의례 같은 이야기를 나눴어. 

어느 나라 사람인가, 

무슨 일을 하는가, 

애인은 있는가 하는 뻔한 질문들 말이야.


페로몬 향 물씬 풍기는 야경 때문이었을까? 

오늘 처음 본 사이였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사이처럼 거리감이 없었어. 

어쩌면 잠시만이라도 어색함 따위는 멀리 벗어던지고 편안한 시간을 갖고 싶었는지도 몰라. 


女:

전 지금 사랑을 의심하고 있어요. 

우린 십 년을 만났어요. 

그리고 불 같던 사랑은 한순간 싸늘하게 식어 버렸어요.

믿기지 않을 만큼 그건 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왔어요.

그 사람은 더 이상 날 사랑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젠 끝내야 하나 봐요.


男:

사랑은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천 가지도 넘을걸요.

사랑이 식은 게 아니에요. 

다만 다른 모습으로 변할 뿐이죠.

불같이 뜨겁던 사랑에서 친근한 사랑으로 말이에요.


女:

그러고 보니 맞아요. 

우린 이젠 가족 같아요.

남녀 간의 설레는 사랑이 아닌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이 돼버렸어요.

하지만 전 그런 사랑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영화와도 같은 사랑을 꿈꾼다고요.


男:

영화 속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죠.

몇 번을 다시 봐도 언제나 부드러운 눈길과 달콤한 입술이 있죠.

하지만 현실 속의 사랑은 끝없이 변해가요.

때로는 시시하고 재미없게도 변해버려요. 

하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아니라 십 년이라면 어땠을까요?


나의 물음에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다만 무언가 깊이 생각한 여자는 갑자기 견딜 수 없게 지금의 남자 친구가 보고 싶어 졌다며, 

그만 가보겠다고 했어. 

나와 나눈 이야기로 많은 생각을 했고, 

그래서 너무도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말이야.


우습지? 

내 사랑 하나도 어쩌지 못하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이 이런 거다 저런 거다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이 말이야. 


하지만, 여자와 대화를 하는 동안 알 수 있었어. 

말과 달리 눈빛은 자신의 남자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여자는 내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야.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은 거지. 


누구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와 같이 말해주었을 거야.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말이야.


왜냐하면,

여자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자신도 모르는 내내 내게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었거든. 


알아. 

적당히 공감해주고, 

적당히 술 한 잔 하자고 하고, 

적당히 여행지에서의 로맨스의 기회를,

내 발로 차 버렸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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