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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09. 2021

믿음과 의심 사이

낯선 설렘: 중국

#중국 #선전 #심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발의 백인 여자가 몇 번을 망설이다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혼자 여행 중인데 급히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잠시만 자신의 짐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아마도 나 역시 커다란 배낭을 가지고 있으니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대개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짐을 맡기는 경우도 없지만, 

짐을 맡긴다고 쉽게 맡아주지도 않는다. 

나중에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지갑이 없어졌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사람을 짐을 가지고 도망갔다고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의 표정은 정말 절박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말하니 고맙다는 말도 없이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짐이 잘 있는지 살피는 것 같아서, 짜증이 밀려왔다. 

애당초 믿지 못할 거면 배낭을 메고 화장실에 들어가든지. 

그 모습에 괜히 짐을 맡아줬구나 하는 후회가 생겼다. 

나중에 뭐라고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닌가 싶어서, 

때마침 보이는 감시카메라 쪽으로 자리를 조금 옮겼다. 

작동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사태가 발생하면, 

저 감시카메라에 담긴 나의 모습이 증거가 될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아까와는 달리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돌아와 내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혹시 몰라 없어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자, 괜찮다고 한다. 

없어진 물건이 있을 리 없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믿고 맡긴 짐인데, 그런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결국, 의심을 한 것은 그녀가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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