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현 Oct 12. 2021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

낯선 설렘: 중국

#중국 #홍콩


술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작가라면서요? 그런데 <노인과 바다>를 안 읽었어요?"


<노인과 바다>가 대작이라는 건 (내가 직접 읽지 않았으니 알 길은 없고) 익히 들어서 알지만,

작가라면 꼭 읽어야 하나 싶다. 


아무튼, 저 뉘앙스가 놀람이 아니라 비꼬는 듯한 말투라, 

난 마시던 술잔을 그의 얼굴에 던지고 싶을 정도로 욱했다. 


아마도 그는 작가는 무조건 <노인과 바다>를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가 읽은 책이라고는 <노인과 바다>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그림을 전공한다는 그녀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직접 눈으로 봤는데 

너무도 환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문을 닫는 시간까지 모나리자만 하염없이 봤다는 그녀에게, 

난 모나리자의 그림이 왜 유명한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그림을 볼 줄도 모르지만, 관심도 없다.


그렇지만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하거나,

그런 생각 조차 안 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동양인 남자에게 

모나리자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꽤나 큰 충격이었는지, 

어떻게 모나리자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냐며 따지듯 내게 반문했다.


어딜 가나 이런 모지리는 있다. ㅡ..ㅡ


모나리자가 그렇게 좋아? 

모나리자는 무언가 특별한 매력이 있나 보네. 

지만 그 매력이 나에게는 안 통하는 모양이네.

그래, 내가 그림을 잘 몰라서 그런지도. 

어려서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집이랑 나무를 그렸던 게 전부야. 

난 그림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꼈어. 

그러다 보니 내 삶에선 그림이란 그렇게 큰 의미를 차지하지 않아. 

난 모나리자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만한 그림들 모두에 관심이 없는 거야.


라고 장황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영어도 짧았고, 무엇보다 좀처럼 나의 영어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조금 설명하다 그만두었다.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람을 잡아먹을 듯이 구는 그녀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었는데, 

끝내 그녀는 나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못 알아들은 척 한지도. ㅡ..ㅡ

 

아무튼 모나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런 감흥이 없을 뿐)

내가 이해가 안 되면 나를 떠나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인데도, 

그녀는 자신도 야시장을 가는 중이라며 내게 동행을 청했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대화 중간중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왜 자신이 사랑하는 모나리자에 관심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계속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끊기로 했다. 


그러다 난, 

야시장 한 귀퉁이에서 멋진 풍경화를 보았다.

그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나지만, 

그 그림은 묘하게 내 시선을 빼앗았다. 

 

한참을 묵묵히 서서 

그 그림만 바라보며 서 있는 내게 

그녀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런 길거리 그림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는 건데?”

“멋진데?”

“모나리자의 매력도 모르는면서....”


아, 참 짜증 난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모나리자를 보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모나리자는 나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한 거야.”

“넌 예술을 몰라!”

결국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그제야 나를 떠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고구마 백 개를 사이다 없이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두눈박이 세상에서 외눈박이를 괴물 취급하듯이 말이다. 

외눈박이 세상에선 두눈박이가 괴물이라는 것을 왜 잊곤 하는 걸까?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내가 세상의 기준이 되려는) 게 아니라, 

내가 그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는

그저 이름 없는 보조출연자일 뿐이다. 


타인이 찍은 여행 사진에서 난

그냥 배경일 뿐이고 소품일 뿐이고,

어쩌면 지우고 싶은 옥에 티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낯선 사람: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