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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13. 2021

마카오 카지노에서 만난 수상한 놈

낯선 설렘: 중국

#중국 #마카오 #카지노




마카오에선 유난히 많이 걸어 다녔다. 

이국적 느낌이 가득한 거리가 맘에 들어서기도 하고,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만 걸어도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금방 나타났다. 

가끔은 버스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안내방송이 잘 되어 있어 쉽사리 내려야 할 곳에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세나도 광장의 첫 느낌은 자유와 젊음이었다. 

광장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작은 곳이었지만, 그 안은 왠지 모르게 생기가 넘쳐났다. 

그것은 낯선 이방인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모습에서 풍겨오는 분위기였다.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흡수되고 싶은 마음에 세나도 광장 바닥 한복판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아, 그래요?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반갑네요.”

영어로 이야기하던 남자가 순간 우리나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듣는 우리나라 말이었다.

하지만 반갑지는 않았다. 

반가움보다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밀려왔다. 

마치 외화를 더빙으로 보는 듯한 이질감이랄까. 


물론, 늘 그런 건 아니다. 

긴 배낭여행의 경우에는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들 금방 친해지고, 

서로 무언가 도움을 주려고 안달이었다. 

한동안 사용할 수 없었던 우리말로 떠드는 편한 수다는 일종의 향수병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에게서는 그런 반가움을 느낄 수 없었다. 

같은 한국인이라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이랄까.

그런 묘한 기류가 그 남자에게서 풍겨왔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데, 

대뜸 남자가 내 손을 붙들었다. 

“혼자 왔어요? 친구들은?”

혼자 왔냐는 물음이 순간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자가 사냥에 앞서 사전 답사를 하는 분위기였다. 

“아니요. 친구들은 지금 리스보아 호텔 카지노에서 놀고 있어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언제든지 쉽게 누군가와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군요, 왜 함께 가지 않았어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조금 있다가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어요.”

“도박이라기보다는 게임일 수도 있죠.”

“전 마카오에 게임을 하러 온 건 아니라서요.”

“아, 사업 때문에 오셨나요?”

“아니요. 그냥 마카오의 거리를 보러 왔어요.”

“아, 그렇군요. 좋네요.”

여기까지의 대화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곧 남자는 본색을 드러냈다.

“제가 카지노에서 돈을 좀 잃어서 그런데요.”

아! 뭐야? 이 새끼. 

순간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 역시 쉽진 않았다.

남자가 너무도 간절한 눈빛을 내게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간절함이 너무나 간절해서, 여차하면 홱가닥 돌변할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울리지 않던 내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도 놀랐지만, 남자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야! 혼자 여행 가더니 연락도 없고, 죽었냐 살았냐?”

내가 외국으로 여행을 나갈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오겠다며, 

늘 비행기 값을 마련해두는 친구, 홍반장이었다.

아! 홍반장.

정말 너란 녀석은!


나는 잽싸게 말을 지어내며 통화를 했다. 

“응? 카지노에서 나왔다고? 알았어.”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여기? 지금 세나도 광장이야. 아, 이리로 오겠다고? 아니야 내가 택시 타고 갈게.”

“뭐지? 이 007 제임스 본드에나 나올 것 같은 스릴감은? 야! 뭔 소리야? 뭔 일 있어?”

“뭐? 다쳤어? 어쩌다?"

"응? 누가 다쳤어? 너 다쳤어?"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이런. 알았어, 지금 빨리 갈게.”

"오긴 어딜 와? 한국으로 온다고? 아, 뭔 소리야!"


나는 남자에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남자는 절박함에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난 서둘러 택시를 잡고 출발해버렸다. 

택시가 세나도 광장을 벗어나고 있는데, 홍반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야, 너 정말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괜찮아. 별일 아니었어.”

자초지종을 들은 홍반장은 그제야 이해가 됐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했다.

 

- 그 남자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는지도 몰랐는데, 도와줄 걸 그랬나?

- 됐어. 그런 사람들보다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 그렇지? 나 나쁜 놈 아니지?

- 그래, 아니야.


어른이면, 

자기 앞길은 자기가 좀 알아서 하라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손 벌리고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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