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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Oct 13. 2021

마카오의 밤거리를 거닐다

낯선 설렘: 중국

#중국 #마카오




여행지에서 나의 산책 시간은 주로 새벽이다. 

동트기 직전에 거리로 나와 숙소 주변을 넓고 길게 돈다. 

이유는 사람이 없는 한적함이 좋고, 

공기도 좋고 기온도 좋고, 

찬찬히 밝아오는 하늘이 주는 감동이 좋아서다. 

무엇보다 안전 이슈도 있다. 

도둑이나 강도도 새벽에는 자러 귀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베트남에서 새벽 산책을 하던 같은 숙소 여행자가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지긴 했지만)


그러나 그날은, 

새벽처럼 한적함에 빠져 늦은 밤, 

카지노와 멀리 떨어진 마카오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름다웠다.  


사실, 그렇게 늦은 밤 시간도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거리에는 인기척이 눈에 띄게 드물었다. 

가끔 도둑고양이만 보일 뿐이었다.  

쉽사리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한적한 분위기였다. 


그 덕에 나는 마음 편히 마카오의 골목 구석구석을 천천히 거닐 수 있었다. 

중국 본토와는 달리 홍콩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문화가 깊이 들어와 있었던 까닭에선지 

마카오의 거리는 꽤나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이국적 매력에 빠졌던 나는 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도를 아무리 봐도 (구글맵 아니라)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는 거리를 너무 멀리까지 돌아다닌 것도 문제였지만 

여기저기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그만 방향감각마저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 큰 성인이 길을 잃어버릴 줄이야. 

애도 아니고.

 

그제야 맛있게만 보이던 오렌지빛의 낭만적이던 밤거리가 무서워졌다. 

저 골목을 돌면 강도라도 튀어나올지 몰라 몇 번이나 미리 살피면서 걸어 나갔다. 

긴장한 탓이기도 했지만 기억날 것 같은 눈에 익은 골목도, 

지나왔던 골목인지 새로운 골목인지 헷갈렸다. 혼란스럽기만 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저 멀리 보이는 휘황찬란한 카지노를 향해 쭉 가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저곳에 가면 사람도 있고 택시도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할 정도의 거리로 보였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경찰을 만났다. 

커다란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너털너털 걷고 있는 내가 의심스럽게 보였는지 

경찰은 나를 불러 세웠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경찰은 자신이 타고 온 자전거 뒤에 타라고 손짓했다. 

성의는 고마웠지만 괜찮다고 하니, 

그러면 조금 멀지 않은 곳에 큰길이 있다고, 방향을 상세히 알려주곤 사라졌다. 

그 경찰이 알려준 대로 가보니, 

신기하게도 그곳은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 바로 앞이었다. 

결국, 난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밤의 달콤한 꿈처럼 오렌지빛 밤거리 산책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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