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을 보다가
간만에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났다.
JTBC의 <서른, 아홉>
여자들의 진한 우정과
"최고로 행복한 시한부가 되게 할 거야!"
라는 대사에서는 느껴지는 죽음까지도 힘차게 이겨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어제 방영된 에피소드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딸의 불륜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던 어머니.
딸의 친구들까지 죄다 소환시켜 혼을 내던 어머니.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딸이 곧 죽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고분고분 해지고, 그 불륜을 순식간에 이해해 버린다.
https://tv.jtbc.joins.com/clip/pr10011419/pm10064300/vo10575876/view
남편과의 불륜 사실을 알고 독하게 굴던 아내에게도,
불륜녀는 당당하게
"조금만 기다려 결국 네가 남아"라고 하고,
내년 여름 전에 죽는다는 말에 입을 다문다.
불륜이 나쁘다.
불륜은 문제가 있다.
라는 이야기는 내 관심사는 아니다.
그건 성인 남녀들끼리 알아서들 풀어가라고 하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마치 죽음이 모든 죄의 면죄부가 되는 듯한 흐름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시한부는
살인을 저지르고, 돈을 훔치고,
아무나 붙잡고 상해를 가해도,
아. 시한부라고.
그럼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인가?
죽음과 죄는 연관성이 없다.
결국 자신의 살육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죽어버린
한때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봐도.
죽었다고 그 죄가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너무 나갔다.
정치 이야기도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 좋아하고 있는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를 까는 것도 아니다.
단지.
죽음이.
죄 앞에서.
당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죽음이 당당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