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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Mar 25. 2022

너 때문이야

어렸을 때, 그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그게 너무나 상처가 돼서 지금까지도....


술만 마시면 언성이 높아지고, 맞기까지....

지금도 그래서....


그때, 그 일만 없었다면....

이렇게 된 이유가 바로....


트라우마. 

상처.


물론, 힘들고 괴롭다. 

나 역시도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한둘이 아니다. 

안다. 

그로 인해 내가 어떤 불편함이 있고,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게.

남 탓을 하는 비겁한 행동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미흡하면서,

내가 약하면서,

내가 부족하면서,


그걸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고,

그래서 지금의 모습을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두 덮어 씌운다. 


특히, 

그 트라우마를 만든 당사자가 앞에 있으면,

더 날카롭게 저주하듯 쏘아붙이고,

그 상대방이 한없이 죄스럽게 느끼도록 한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아니,

그게 맞는가.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게 된다. 

아무리 애지중지 아끼고 보호하려고 해도,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오는 상처들로 흉터가 생긴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보호복을 만들어도, 

심지어 무인도에 혼자 있다고 해도,

사람은 자연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그때마다. 

남 탓. 

너 때문에.

그 일 때문에. 


이러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 탓이지 않다. 

그걸 이겨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 탓이다. 


"엄마! 내가 일찍 깨우라고 했잖아. 오늘 시험이라고. 시험 망치면 엄마 탓이야!"


왜, 엄마 탓인가.


내가 공부를 안 한 탓. 

내가 일찍 일어나지 않은 탓.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길 바라는 엄마의 사랑을,

못 알아본 내 탓이 가장 크지 않은가. 


왜 남 탓을 하면서, 

왜 당당하려 하는가.


화살을 남이 아닌, 내게 돌렸을 때.

나는.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용기와 힘과 지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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