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은 규칙적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밥 먹고, 외출하고, 돌아오고, 씻고, 잠드는....
내가 바로 강아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정해진' 루틴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다이어트에 관한 에세이니까,
식사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아침 6~7시에 아침을 먹고,
아침 9시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큰 사이즈로 한 잔 한다.
그리고,
점심 3~4시에 점심 겸 저녁을 먹는다.
(저녁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점심식사를 건너뛰는데
지독한 집돌이라 저녁 약속이 잡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행히, 식탐이 많지는 않아서,
배가 고파져서 식사를 챙길 뿐,
뭔가를 막 먹고 싶어서, 식사를 챙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치킨과 떡볶이가 당기긴 하지만)
의사는 내게,
하루에 두 번 한약을 먹으라고 알려줬다.
오후 2시와 저녁 8시다.
한약을 처음 먹기로 한 날,
아침에 라면을 먹었다.
왜 아침부터 라면을 먹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땅히 할 줄 아는 음식도 없고,
김치 말고는 반찬도 없고,
라면만큼 편한 한 끼가 없어서다.
그리고 난,
주로 아침 치맥, 아침 삼겹살에 소주, 아침 라면.... 등을 좋아한다.
저녁에 먹고 잠드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라면으로 아침을 해치우니,
점심시간(12시, 정오)이 가까워지면서 허기가 밀려온다.
이따가(오후 3~4시) 뭘 먹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냉장고에 있는 냉동식품을 떠올리며,
냉동 볶은밥에 계란 프라이를 2개 올려서 먹어야겠다 생각한다.
배가 몹시 고프다.
오후 2시.
의사의 처방대로 한약 한포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셨다.
씁쓸한 맛이, 딱 좋다.
(난 쓴 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술이나 이온음료처럼,
마시자마자 몸에 확 느껴지는 건 없다.
입 안의 쓴맛도 연이어 마신 물 한 잔에 금방 사라졌다.
효과가 나타난 것은 오후 3시경.
포만감이 느껴지거나 그런 건 아닌데,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이 부분이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뇌가 조종당하는 기분이랄까?
최면을 통해 먹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분명, 머릿속으로는
점심을 먹어야지.
아까 생각했던 계란 프라이에 냉동 볶은밥을 먹어야지.
하는데,
손이 안 간다.
그냥 방울토마토나 몇 개 먹고 치우자.
하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고,
결국, 점심 겸 저녁은 건너뛰었다.
생애 처음 먹는 (다이어트) 한약 빨은 대단했다.
(물론 2번째부터는 그렇게 강렬하진 않았다.)
일단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허기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포만감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었다.
분명 공복인데, 배가 안 고프다.
이건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안다.
아시안 배낭여행을 할 때,
툭하면 밥때를 놓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몇 시간을 걸었을 때,
내 몸에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몸 안에 지방이 타는 느낌 같다랄까.
아무튼, 이런 느낌을 난 좋아한다.
그 느낌을 좋아하다 보니,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그냥 패스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허기져서 짜증이 나기보다는,
몸에 퍼지는 쩌릿쩌릿한 느낌을 더 즐겼다.
그 느낌과 비슷했다.
저녁 8시에 한약 한 포를 더 마셨고,
2번째는 1번째에 비해서 몸에 와닿는 반응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설마, 벌써 면역력이 생긴 건가?)
의사는 하루에 6~7 천보 정도는 걸어주는 게 좋다고 했지만,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일단 첫날은 운동 없이 침대로 향했다.
솔직히,
생애 처음 먹어보는 (다이어트) 한약이다 보니,
내 몸으로 그 효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약을 먹는 것만 빼고는,
평소대로 먹으려고 했다.
그래야 내가 한약 때문에 체중이 변하는지,
아니면, 굶어서 (실제로 저녁 한 끼를 굶었다) 체중이 변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한약을 먹고.
식사를 반으로 줄이고,
밥과 면을 피하고,
하루에 6~7 천보 씩을 걸으라고 했지만,
그래서는,
한약 빨 인지,
아니면 나머지 빨 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최대한 한약을 먹는 것 말고는 변화를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어쩔.
배가 안 고픈데.
결국 평소와 다르게 저녁을 굶게 됐고,
그것 말고는 다른 변화는 주지 않았다.
체중은 어제에 비해 2kg이 빠졌다.
저 정도는 한 끼 굶으면 빠지고, 먹으면 찌는 kg이다.
한약빨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의사는 보름 정도를 일단 지켜보자고 했고,
나 역시 보름 정도 내 몸의 변화를 꼼꼼히 체크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내장지방 지수, 체지방 지수, 비만 등급이 1단계씩 내려갔다.
신체나이는 50세에서 49세가 되었다.
작은 변화지만,
기분이 즐거워지는 건 당연하다.
먹는 즐거움보다.
몸의 변화에 따른 즐거움이 훨씬 크다.
지금의 즐거운 기분을 잘 기억해간다면,
식사량을 줄이거나,
운동을 하거나,
술을 먹지 않더라도,
그렇게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