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바츠, 영화처럼

낯선 설렘: 크로아티아

by 감성현

#1

해가 짧았다. 시간은 고작 저녁 여덟 시인데, 거리에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카를로바츠는 의외로 음산했다. 음산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난 음산함이 좋다. 음산함은 평소보다 내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몰입하는 깊이도 깊고, 더 진해진다. 환한 낮보다 어두운 밤에 집중이 잘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물론 무서울 때도 있다. 가령 깊은 밤에 도착하는 낯선 도시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얼마나 더 가야 뭐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는 끝없이 펼쳐진 우주만큼 광활하게 느껴지고,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이빨을 감추고 으르렁거리는 늑대처럼 느껴진다. 찬찬히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그 두려움은 사라진다. 터질 것처럼 겁을 주다가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처럼 작게 느껴진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부터 더 이상 그 골목은 두렵지 않다. 무서움과 걱정은 마음 깊은 속으로 부끄러운 듯 숨어 버린다.


알게 되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밤이 깊어지자 카를로바츠는 더욱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했다. 하지만 눈이 오면 좋아서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음산함이 밀려오자 가만히 있을 수만 없어서 거리를 쏘다녔다. 카를로바츠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크로아티아의 도시 중, 카를로바츠는 가장 음산한 도시었다. 그 도시의 골목골목을 하염없이 거닐고 또 거닐었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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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적이 드문 어느 골목에서 만난 사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어디를 찾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직역하자면 “어딜 그렇게 쏘다니니?”라는 말이었다.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어디를 찾아가고 있지 않았다. 그냥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물음에 대답이 있었다. 말대로 쏘다니고 있을 뿐이다.


여행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다 보면, 두 가지 질문을 꼭 받는 것 같다. 하나는 “어디서 왔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디로 가냐?”는 것이다. 대부분 도시에 대해서 묻는 것이지만,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답을 못한 건 특별히 ‘어디’라고 말할 곳이 없어서였다.


목적지가 없어도 돌아다닐 수 있다.

걷는 걸음걸음이 곧 목적이 된다.


재차 어디를 가냐며 도움을 주겠다는 그에게 대답 대신 웃기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호기심이 경계심이 될 거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가 돈이 떨어져서 빈집을 털려는 도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역지사지. 나 역시도 우리 집 앞에 나타난 낯선 외국인이 별다른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경찰에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웃어라. 웃자.

선량한 여행자로 보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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