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크로아티아
#1
명소라서 사람들이 찾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명소가 만들어지겠지만, 가끔은 생각해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고 꼭 명소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다수가 인정하는 명소보다 나만의 명소가 더 애착이 가는 이유다.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겐 아무리 유명한 해변이라도 시큰둥한 장소일 뿐이다. 사람마다 선호하고 가보고 싶어하는, 마음에 품은 곳은 따로 있는 셈이다. 여행은 가고 싶은 곳을 가야 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은 가지 않아야 한다. 여행을 자유라고 말한다면 그래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플리트비체였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 있는 8개의 국립공원 중 가장 넓으며,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선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 이상을 머물면서 봐야 할 정도로 크고, ‘요정의 정원’과 같은 온갖 수식어가 찬사처럼 붙은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존한 자랑스러운 곳이지만, 원하지 않았다.
분명, 플리트비체는 명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파진에서 만난 선배여행자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크로아티아까지 와서 플리트비체에 들르지 않을 생각을 하냐고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겠지만, 사람에 의해서 관리되는 자연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알았어. 그만해. 안 가면 되잖아.”
당신이 화를 냈다. 박물관을 좋아했던 당신과 박물관을 지루해 하는 내가, 처음으로 여행 중에 다퉜다. 당신은 화를 낸 게 아니라 속상해서 그런 거라고 곧 말을 돌렸지만, 난 서먹해진 둘 사이가 불편해, 나가려고 방문을 긁어대는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2
8번 국도를 중심으로 크로아티아 서쪽 해안을 따라 이동경로를 짰던 처음부터 플리트비체는 골칫거리였다. 플리트비체는 8번 국도에서 벗어나야 갈 수 있었다. 나에겐 플리트비체는 덩치만 클 뿐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동네 뒷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겐. 그러하기에 플리트비체를 찬양하는 그 모든 수식어에도 공감할 수 없었다.
플리트비체다.
여기에 와 있는 건, 순전히 일정이 생각보다 앞당겨지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때마침 플리트비체와 가까운 도시에 있었고,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이것도 운명인가 싶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플리트비체에 왔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막차를 타고 온 탓에 사방은 어두웠고,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무키네Mukinje 마을에 가면 숙박시설이 많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플리트비체에 있는 비싼 호텔을 과감하게 뒤로하고 커다란 나무에 가려서 달빛도 비치지 않는 깜깜한 밤길을 한참을 걸었다. 가끔가다 차가 지나다니긴 했지만, 깊은 밤에 들어온 숲은 정말 오싹하고 무서웠다. 알고 있는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미친 듯이 돌아
다녔다. 걸어서 오 분 거리라더니, 삼십 분은 족히 걸렸다.
힘들게 도착한 무키네 마을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SOBE라는 간판이 있는데,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 같았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불이 켜진 집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비수기라 그런 걸까? 아니면 이미 모든 방이 꽉 찼기 때문일까? 한참을 헤매다가 그나마 불이 켜진 집을 찾았다. 하지만 그 불은 너무 희미해서 켜져 있다고 봐야 할지, 꺼져 있다고 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문을 두들기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용기 내어 문을 두들기자 잠에 취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방을 구하고 있다고 하자, 단칼에 없다고 한다. 단칼에 모든 희망이 죽었다. 결국, 다시 그 무시무시한 길을 돌아서 플리트비체에 있는 비싼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3
다음 날 아침 둘러본 플리트비체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냥 그랬다. 어떻게 플리트비체를 보고도 감동을 받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이름 모를 물고기와 오리. 그리고 버섯이 전부였다. 그토록 극찬하던 광대한 자연경관과 놀라울 정도로 맑은 물, 신선한 산림욕. 이런 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일관되게 무덤덤해 하는 내 반응이 나조차도 이럴 거면 왜 왔을
까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그냥 그랬다.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도시들이 기대와 같이 모두 좋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플리트비체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여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고마운 계기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여행에서 버려지는 경험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