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크로아티아
#1
벨리카 고리차는 우리나라 시골 같았다. 생김새는 조금 달랐지만 소를 비롯한 다양한 가축들을 키우고 있었고, 길을 묻는 낯선 여행자에게도 친절했다. 아이들은 해지는 저녁까지 몰려다니며 뛰어놀았고, 순박하고 해맑았다. 사진기를 들이밀면 분주하게 움직이다가도 그대로 멈추고 포즈를 취한다. 어디서나 아이들은 호기심이 왕성하다. 조금 더 친해지자 하나둘씩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고 졸라댔고, 자기가 직접 찍어보고 싶다며 사진기를 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했다. 사진기를 건네주자 곧바로 유명작가 못지 않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친다. 비록 흔들리고 구석이 몰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찍은 사진은 따뜻하고 재미있다.
내 이름을 말해주자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이들이 이해를 했는지, 하나둘씩 앞다투어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다. 하나같이 길고 발음하기 힘들었다. 결국, 이름은 하나도 외우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몇 걸음 걷다가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돌아본 자리엔 아이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놀러 가고 없었다. 저 멀리 재잘거리며 서로 장난치며 뛰어가는 아이들의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2
여러 나라, 여러 도시의 공항을 가봤지만, 플레소Pleso 공항만큼 감성 깊은 공항을 아직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도착한 사람들은 짐을 찾는 곳의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중 나온 사람과 정신없이 뽀뽀를 날린다. 짐을 찾는 시간도 기다릴 수 없는 듯 사랑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서로에게 말해준다. 오랜만에 자신의 아이를 보는지, 유리벽에 손을 대고 앉아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춘 여자는 금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랑한다. 아이야.
사랑한다.
공항 건물 옥상으로 가면 활주로를 볼 수 있는데, 마치 버스터미널처럼,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얼굴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이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연인을 배웅한다. 잠시 이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뛰어다니기 바쁘거나, 배웅보다는 커다란 비행기에 더 관심을 보인다.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보다는 응원에 가까운 밝은 표정들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나도, 배웅을 받아보고 싶어졌다.
#3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들이 많았지만, 돌아가야 했다. 아쉽지만 끊어내야 했다.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힘들지 않지만, 멈춰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힘들었다. 알고 있다.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끝내는 것이 가장 좋다. 더 길면 여행은 곧 일상이 된다. 길 위에서의 삶이 된다. 여행이 일상이 된다면 슬플 것이다. 여행은 그대로의 여행이기를 바란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올라탄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내 활주로에 들어섰는지, 잠시 주춤하던 비행기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랐다. 이제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진한 추억의 향기를 남기는데, 이번 향기는 오래갈 것만 같다.
창밖으로 내게 손을 흔드는 누군가를 본 것 같기도 하다.